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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2017.09.07
가까스로 반짝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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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대학 후배가 첫 에세이집을 냈다.
전공이 건축이라서 전공 관련 책을 몇 권 쓴 적은 있었지만, 에세이집은 처음이다.
오랜만에 문자로 연락을 해 온 후배가 책 출간 소식을 알리며 이렇게 말했다.

“형이 처음으로 제게 말해준 사람이에요. 글을 써 보는 게 어떠냐고.”

아 내가 그랬던가. 맞아 그랬었지.
아주 오래전, 윤경이가 개인적인 글을 포스팅하는 블로그를 읽으며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그제야 났다.
겉으론 얌전하고 수줍은 친구인데, 블로그 글 속의 그는 전혀 달랐다. 유머러스하고 적당히 시니컬하면서 수다스러웠다. “너는 말보다는 글이 더 맞는 사람 같아 윤경아!” 물론 난 그 이후로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도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래서 후배의 첫 에세이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움과 동시에 겁도 났었나 보다.
어... 내가 괜한 오지랖을 부려서 애 고생시킨 건 아닌가?
또 한편으론, 책이 별로면 어떡하지?

처음 책을 써보라고 권유한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일까.
나는 가능한 그 책의 첫 독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예약주문을 하고 며칠 후 책이 도착하자마자 다른 일을 제쳐둔 채 그의 책을 읽었다.

책 안에는 내가 익히 잘 아는 후배의 모습이 여과 없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유머러스하지만 허세도 없이 솔직 담백하게 써 내려간 글을 읽으며, 아 나의 촉이 옳았구나 내심 안도했다. 아무래도 지인의 글이다 보니, 남들보다 더 재밌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았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비슷한 나잇대의 사람이라면 유쾌하게 많은 부분을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또한 내가 지인이기 때문에 나만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만,) 내가 친숙한 후배의 모습과 더불어, 그 이면에 내가 전혀 모르고 지나쳤던 후배의 생각들과 고민들 아픔들도 이렇게 많았구나 하는 사실에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몇몇 장면들은 나도 알고 있는 나와 함께 했던 에피소드들이기도 한데, 늘 자신의 의견이나 감상을 잘 표현하지 않던 그의 관점에서 듣는 이야기는 사실 처음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꽤 오랜 시간 나름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는 동안 마주하게 된 생경한 그의 모습은 나를 반성하게 했다.

‘아 더 신경 써줄걸, 술 한잔하면서 더 속 깊은 얘기를 해 볼걸’ 하는 선배로서의 후회도 후회지만 그보다 더 아프고 부끄러운 사실은, ‘아 나는 정말 사람을 쉽게 속단하며 살았구나’ 하는 점이었다. 남자 선후배 사이라는 것이, 늘 그렇게 내밀할 순 없으니 뭐 그렇게 미안해할 것까지야 라고 후배는 말하겠지만, 그래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아 잘 살고 있구나, 윤경이는 참 변함없어’ 라고 편하게 생각해온 나의 간편한 속단이 미안했다.

그리고 나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글을 써보기로 맘먹은 것에,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가 전혀 몰랐을 모습들을 알게 해준 것도 고맙다. 책에서도 자주 언급되지만, 우린 어느덧 SNS와 문자의 얄팍함에 의지한 인간관계가 익숙해져버렸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변해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만큼은 더 느리고 더 공들여야 했던 예전이 난 더 좋았다. 후배의 이야기이지만, 나의 젊은 시절도 함께 돌아보게 되어서 참 반가웠다.

윤경아 축하해!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