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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l 2000.07.18
나의 야구이야기

"나는 선천적으로 운동을 별로 안 좋아한다. 게다가 소질도 없다. 소질이 없어서 운동을 싫어하는 건지 아니면 싫어해서 안하다 보니 소질이 없어진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내 기억이 허용하는 극한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역시 난 운동엔 흥미도 소질도 없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주로 나의 하루 일과는 피아노 치기, 그림 그리에서 노래부르기 등의 반복학습이었다. 물론 동네 아이들과도 곧잘 어울려 놀곤 했다. 그 때 당시의 강남역 주변은 시골 촌이랑 다를 바 없을 정도로 개발이 안되었던 때라 나의 어린 시절은 시골 소년의 그것과 거의 흡사했다고 생각한다. 메뚜기 잡아서 구워먹기 (실제로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올챙이 잡아다가 개구리로 키우기 같은 자연과의 학습서부터 망까기, 1234,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얼음땡, 미끄럼틀에서의 탈출 게임 등등... 그때 당시 유행하던 놀이들은 두루 어울렀던 기억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난 축구나 야구 같은 소위 정식 스포츠는 딱 질색이었다. 성격이 너무 개인적이어서 남들과의 협력이 요구되는 구기종목이 딱히 어울리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땅한 이유가 없다. 어쩌면 공에 맞을까봐 두려웠을까? 아무튼 동네 친구들이 점점 유아틱한 놀이에 흥미를 잃고 축구와 야구에 몰두할 무렵 나는 집안구석에서 나만의 놀이를 탐닉하고 있었다.

하루는 이런 나를 못마땅하게 혹은 딱하게 생각하신 아버지가 야구배트와 글러브를 사들고 오셨다. 아들을 남자답게 키우시려는 생각이셨던 건지 아니면 늘 집에서 거치적거리는 나를 밖으로 내보내려는 어머님의 입김이었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다음날 아침 난 번쩍거리는 새 배트와 글러브를 어색하게 둘러맨 채 동네 공터로 나가게 되었다. 아이들이 나의 새 장비를 보자마자 그 후 난 곧바로 소위 귀빈대접을 받게 되었다.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서 딱히 자랑스럽지도 않았었지만 눈이 동그래진 아이들을 보니 나름대로 우쭐했었던 기억이다. 나무배트는 소금물에 하루를 담궈야한다, 글러브는 자동차 타이어 밑에 깔아서 길을 들여야한다 등등 어떻게든 자기가 나의 새 장비를 맡아서 다뤄야하는 이유를 열심히들 토로하는 아이들을 옆에 끼고 한 며칠 기세 등등했다. 그러나 난 야구게임에 참여하는 건 싫었다. 그저 나의 장비로 열심히 신나게 야구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시소에 앉아 그림책을 보거나 때론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코치나 감독의 역할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 따라 일찍 퇴근하신 아버지가 내가 야구게임을 하는 걸보고 싶다고 하셨다. 요즈음 자주 야구하던 것 같던데요 라는 어머님의 거드심과 그려? 하고 따라나선 할머님까지 가세하여 정말 어쩔 수 없이 야구를 해야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낭패였다.

하는 수 없지. 언제나 늘 그 시간이면 야구를 하고 있는 동네 아이들에게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다. 오늘 난 야구를 해야한다고. 니가? 하고 어안이 벙벙해져있던 아이들은 곧 슬렁슬렁 저기서 걸어오는 우리 가족일단을 보고는 당황해했다. 나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했다기 보단 나를 여태껏 안끼워주고 나의 야구배트와 글러브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에 대한 죄의식이 컸으리라.

가족의 등장으로 졸지에 난 4번 타자가 되었다. 그냥 공이 오면 휘두르면 돼. 주장의 한마디였다. 말은 쉽지.

3명의 주자가 나가고 나의 차례가 되었다. 아버지는 무척 신나하시는 분위기였다. 어머님은 온화한 미소로 지켜보고 계셨고 할머니는 저러다 공에 맞으면 어짜오려... 여동생들은 니가 어찌 야구를? 하는 표정으로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첫구가 날라왔다. 동네 꼬마 야구라 투질이 정확할 리 없다. 아슬아슬하게 하마터면 몸에 맞을 뻔했다. 겁이 확 났다.

이런걸 왜 좋아라 매일 하지? 바보들 아냐? 볼!

두 번째 공이 날라왔다. 그러나 역시 볼 이였고 나는 배트를 휘두를 엄두조차 못 냈다.

참고로 그때 당시 게임에선 포볼이란 없었다. 왜냐하면 스트라이크로 삼진을 잡는다는 건 그 애들의 수준으론 무리였기 때문에..무조건 공을 맞혀서 나가는 게 일종의 예의였다.

3번째 공까지 볼로 거르고 나니 포수가 짜증을 냈다. 좀 휘둘러봐.주장의 초초해하는 얼굴과 가족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싫건 좋건 간에 한번은 배트를 휘두르고 볼일이었다. 4 번째 공이 날아오고 난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따앙! 하는 소리와 함께 공이 저 멀리 공터를 넘어 힘차게 날아갔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허공을 가로질러 기세 좋게 날아간 것은 공이 아니라 나의 배트였다. 처음 휘둘러본 야구배트의 원심력을 이겨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아이들은 깔깔대며 웃었고 다행이 아버지도 껄껄 웃으셨다.

할머님은 연신 아이구 저 방망이에 누구라도 맞았으면 어짜오려.... 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같이 웃고... 주장의 얼굴만 심각했다. 머쓱해져서 들어가는데 주장이 잠시 아이들과 얘기를 하더니 나에게로 다가왔다. 대주자를 하라는 것이었다.

삼진아웃으로 들여보내기엔 나의 배트와 글러브의 역할이 정말 컸었나보다. 대주자가 뭔지도 모르는 나에게 주장은 무조건 타자가 공을 치거든 2루로 향해 뛰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쉬워 보였다.투덜거리는 1루 주자와 교체한 후 다음타자가 등장했다.

타앙!

난 주장이 일러준 대로 정신없이 2루를 향해 뛰었다. 의기양양하게 주장을 뒤돌아보니 다시 모두들 웃고 있었다. 파울이었다. 파울이면 다시 가야돼? 응 뭐야 이거..복잡하잖아....

2번째 공은 헛스윙. 3번째 공이 날아가고 다시 탕 소리와 함께 모든 주자들이 뛰기 시작했다. 또 바보가 되기 싫었던 나는 잠시 주저하며 주장을 쳐다보았다. 주장이 시뻘개진 얼굴로 뛰어 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뛰는 거구나. 2루로 정신없이 달려가는데 2루수가 공을 잡더니 씨익 웃으며 나를 보는 것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나한테잡히면 넌 끝이지'

뭐 그런 표정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방향을 선회하여 다시 1루로 뛰기 시작했다. 무조건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뿐 이였다. 아마도 2루수는 여유 있게 내가 1루에 거의 도착하기를 기다려 1루수에게 송구를 한 것 같았다. 1루에 거의 다다를 무렵 어느 순간 공은 1루수의 손에 있었고 그 역시 오싹

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왜 나만 잡아먹으려들 그러는 걸까... 일루수가 나를 터치다운하려는 순간 나는 몸을 빼내어 다시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번엔 홈으로.

의기양양하게 홈을 밟고 나서 주위의 반응을 확인 한 후 난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금새 깨달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이미 입맛을 쩍쩍 다지시며 집을 향해 돌아가고 계셨고 할머님은 뒤따르시며 아이고 저렇게 뜀박질 하다가 넘어지면 어짜오려... 어머님은 밥먹기전엔 들어와라 한마디만 남기셨다.

주장은 화가 있는 대로 났다. 우리 가족들의 퇴장에 야구경기는 잠시 멈춰지고 아이들은 망연히 주장의 얼굴과 나의 배트 글러브만 번갈아 바라보았다.

참으로 어색한 침묵이었다.

배가 고프다며 나는 나의 장비들을 그냥 나둔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론 아버진 다시는 나에게 야구를 권유하지 않으셨고,

난 다시 집구석에서 나만의 놀이에 열중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