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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l 2000.07.18
나의 피아노 이야기


"잡지사나 신문사의 인터뷰를 하다보면, 혹은 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언제부터 음악을 시작했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어떻게 가수가 되었느냐라는 질문은 가요제를 통해서요 라고 대답한 뒤 운이 좋았어요, 한번 씩 웃으면 잘 설명이 되지만 어떻게 음악을 시작했느냐 라는 광범위한 질문에 적절히 대답하려면 어디가 그 첫 시점인지 더듬어 올라가기가 쉽지가 않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가 그 시작일 수도 있고, 중학교때 유재하 앨범을 들었을때가 그 시작일 수도 있다. 처음엔 이런 질문들에 상황에 맞춰 그때 그때 생각나는대로 대답했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자 나의 대답이 대충 스스로 정리가 되어 이젠 누가 물어보면, 아 그건 말이죠 제가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인 것 같아요 라고 대답하곤 한다. 음악을 하려면 ( 음악에 관한 일에 종사하려면) 꼭 악기를 다루어야 하는건 아니지만, 대게의 뮤지션들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악기를 배우면서부터 그리고 꽤 능숙하게 그 악기를 다루면서부터 그의 음악 역사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얘기하면 작곡을 잘하려면 꼭피아노나 기타를 잘 쳐야 하나요 라고 애처롭게 물어보는 수많은 학생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진 모르겠지만, 사실 한가지의 악기를 잘 다루면 작편곡을 하는데 굉장히 유리한건 사실이다. 4살에서 5살로 넘어가는 겨울로 기억된다. 엄마 손에 이끌려 4살박이 꼬마에겐 꽤 먼거리를 걸어서 피아노 레슨 선생님댁에 갔었다. 난 내가 뭘 하러 가는지도 몰랐고 다만 엄마와 함께 외출하는 것이 마냥 신났을 뿐이었다. 첫 레슨은 아마도 바이엘 상권 1번이었거나 손모양 교정하기 등등의 매 우 기초적인 것이었겠지만 집으로 돌아올땐 엄마도 나도 사뭇 흥분되어 마냥 들떴던 기억이다. 어머닌 굉장히 엄하신 외할아버지가 음악은 딴따라나 하는 짓이여 하고 금지령을 내리신 바람에 그렇게 하고 싶었던 피아노공부나 성악공부를 못하신게 한이셨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가난한 고 학생이셨던 관계로 역시 음악엔 관심이 무척 많으셨으나 피아노 한번 구경하기 힘드셨다고 한다. 두분들의 맺힌 한이 나의 조기교육으로 승화되었지만 난 그게 부담스럽기는커녕 그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 참 나는 좋은세상에서 태어난거구나 생각했었다. 게다가 피아노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 다. 나의 순서를 기다리면서 나보다 나이 많은 누나들이 곧잘 곡다운 곡을 치고 있는걸 보노라면 나도 꼭 언젠간 저런 멋진 곡을 칠테야 다짐하곤 했다. 이런 나의 열성의 탄복하신 아버지는 머지 않아 피아노를 한 대 사주셨고 그 후부턴 레슨 선생님댁의 낡은 스패어 피아노가 아닌 멋진 나만의 새 피아노로 연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교육 시스템이 그러하듯 혼자서 따로 배우는것보단 여럿이서 같이 경쟁하며 배우는 것이 훨씬 능률적이다. 같은 나이의 동네 아이들은 모두 내가 피아노칠동안에 태권도 학원이나 주산학원 (지금은 참 생소한 단어이지만 그 때 당시엔 어렸을 때 부턴 주산을 배우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믿어졌었다.)들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나만의 길을 외롭게 걸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나를 격려해주시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본인 자신의 욕심때문이었는진 모르겠지만 몇 달 쯤 지나고 나서 어머니가 레슨에 합류하시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처음부터 나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일단 내가 먼저 시작했는데다가 이미 굳어질대로 굳어진 손이 어찌 나의 유연한 고사리같은 손가락을 당해내리. 게다가 5살짜리 꼬마에겐 엄마는 하늘이고 하늘인 엄마가 나보다 못하는게 있다는건 매우 짜릿한 흥분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어머니와의 경쟁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내가 혼자서도 레슨을 다닐수 있는 나이가 되자 어머니는 곧 레슨을 그만 두셨다.) 지금은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 당시에는 바이엘 상 하권과 소곡집, 이걸 끝내고 나면 하농,체르니, 소나티네, 피아노명곡집 이라는 컴비네이션이 매우 일반적인 시절이었다.바이엘을 끝내고 체르니 30번을 치기 시작하자 처음으로 피아노가 지루해지기 시작했다.바이엘을 치던 당시의 나의 목 표는 그당시 취미였던 거울앞에서 동요부르기를 피아노와 함께 부르기 였는데 그럭저럭 동요곡의 반주를 쳐낼수 있게되자 딱딱한 하농스케일따위에 흥미를 잃어버린것이었다. 체르니또한 철저한 손가락 연습곡이어서 레슨때마다 소나티네와 소곡집만 연습해가면 늘 꾸중을 듣기 일수였다. 내가 권태기 에 빠질때마다 나의 피아노선생님은 그때 그때 꽤 효과적인 방법으로 나를 달랬는데, 연습을 많이 해 오면 맛있는 빵주기, 체르니를 한곡땔때마다 예쁜 스티커 붙여주기 등등의 유아적 방법 보다는 정작 나를 고무시켰던 것은 뒤에서 다소곳이 앉아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여학생을 불러다가 그 때 당시엔 도저히 나로선 연주가 불가능한 아름다운 곡을 치게 하는것이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넋을 잃고 이렇게 치려면 체르니도 다 끝내고 하농도 열심히 쳐야만 할 수 있는거란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이를 악물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에 그 여학생은 전공을 목표로 했었던 같다.) 그러던 어느날 초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때로 기억된다. 부모님 앞에서 난 더 이상 피아노 레슨을 안가겠다고 으름짱을 놓았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과는 달리 이젠 친구들도 많고 숙제도 많고 쉬는 시간에 학교 풍금을 치며 애들앞에서 우쭐대기에도 충분하고 한참 와리가리에 열중하다가 혼자 슬그머 니 피아노가방들고 사라지는게 싫었던 것이었을 것이다. 잠시 놀라시던 부모님은 나의 이런저런 피아노를 그만치고 싶은 이유를 듣고 계시더니, 나를 설득하기 시작하셨다. 부모님들이 내 나이때엔 피아노를 배운다는건 정말 부잣집 자제들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악기는 어렸을 때 시작하지 않으 면 한계가 있다. 엄마를 보렴 이제와서 그만두면 곧 말짱 도루묵이다. 여때껏의 시간이 아깝지 않느냐. 등등등.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이성에 호소하는 설득은 8살짜리 꼬마에겐 아무래도 무리였다. 계속 뾰루둥해서 듣고 있는 나에게 이번엔 작전을 바꾸셨다. 너 앞집 사는 00형 알지? 그집 아줌마 가 그러시는데 그형이 왜 옛날에 자기가 피아노 그만둘 때 때려서라도 계속 시키지 그냥 나두셨냐고 하소연하더랜다. 지금 그 형은 고등학생인데 다시 시작하려고 해도 시간도 없을뿐더러 까맣게 다 잊어먹어서 소용없다더라. 나중에 절 때 우리보고 그때 왜 저를 때려서라도 계속 레슨을 시키지 않으셨어요 책망하지 말고 잘 생각해보라. 후회같은건 안해! 라고 돌아서 나오긴 했지만 왠지 찜찜했다. 음악과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이 생긴 앞집 형이 그랬다면 혹시 나도? 앞으로 어찌 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일로 위협하는건 다소 치사하다고 생각했지만 눈물을 흘리며 부모님앞에서 책망할 미래의 자신의 모습은 무척이나 부끄럽기 짝이 없을것이었다. 그러나 8살짜리의 자존심도 뱉은말을 당장 거두어들이기엔 충분히 깐깐해서 부모님 입장에선 당분간 당시 나의 입장으론 영원히 레슨을 그만두게 되었다. 친구들은 내가 레슨을 안가도 되는걸 기뻐했고 우리는 해가 질때까지 매일 매일 놀았다. 이런게 사는거구나 싶은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고 얼마 안지나 학교 수업시간이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나의 이름을 호명하셨다. 영문도 모른채 일어난 나는 내가 그 달의 착한 어린이로 지정되어 상을 받게 되었다는 선생님 말씀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유인 즉슨 4살때부터 한번도 거르지 않고 피아노를 꾸준히 친 것이 타의 모범이 되 었다는 것이었다. 모든일이든 꾸준히 거르지 않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랍니다 그렇지 동률아? 나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학생들은 부러움과 다소 경이로운 표정으로 박수를 쳐주었다. 무언지 모를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얼굴이 달끈 달아올랐다. 선생님 사실은 얼마전 그만 두었는데요 라고 말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런 죄책감은 여자아이들에게 둘러싸여 풍금을 멋지게 치고 있는 우쭐함과 섞여서 매우 이상한 감정을 복합적으로 만들어내었다. 이런게 후회라는걸까? 잘은 몰라도 확실했던건 그 상황속에서 보다 떳떳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한테 상받은건 말하지도 않은채 얼마동안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피아노 앞에 앉았다. 엄마는 나를 힐끗 쳐다 보시더니 왜 피아노 안친다며? 하고 반문하시는듯한 표정을 참시 지으시곤 아무말 없으셨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다시 레슨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매우 매우 열심히 연습을 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하농과 체르니는 게을리하고 내가 마음에 드는 곡만 열중했지만 그럭저럭 더 이상 시간이 없어 레슨을 받을 수 없었던 중학교 3학년때까지 쭉 피아노를 쳤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상을 받았던 것은 우리 엄마와 담임선생님 사이의 모종의 어린애 쉽게 다루기 일환으로서의 술책이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간에 그 방법은 성공적이었고 지금으로선 고맙게 생각한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미래에 내가 후회할짓을 하는것에 대해 매우 민감해지게 되었다. 좋게 말하면 사려깊게 되었다고 할까? 다른 사람이 나에게 손가락질 하는 것 보다 내 자신에게 스스로 실망감을 안겨주는 것이 더욱 큰 상처가 되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는 미래에 나에게 자문을 구하곤 하는데 이는 꼭 내 사전엔 후 회란 없다에서 출발하는 자존심 문제라기 보다는 결국 나의 문제는 내가 제일 잘 안다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끝으로 내가 거쳐간 3분의 피아노 선생님들에게 고맙다는 말과 더불어 연습을 안해서 죄송하다고 그래서 지금 무척 후회(?) 하고 있다고 전해드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