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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l 2000.07.25
대학가요제 이야기 2

"1차 예선날은 매우 추웠다.

같이 동행해 주었던 친구의 따뜻한 배려가 담긴 주머니 난로를 움켜쥐고 정동문화회관을 향해 걸어가던 덕수궁 돌담길은 처음 연대 켐퍼스에 발을 내딛었던 그 날만큼이나 흥분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큰 뜻을 품고 올라온 수많은 지원자들은 정말 각양각색이었다. 기타를 잡고서 고래고래 노래 연습을 하는 걸쭉한 부산 사나이부터 산뜻한 미니 스커트를 맞춰 입고서 노래연습은 제치고 열심히 춤연습에 한창이었던 쌍둥이 자매, 멤버들의 평균 모발길이가 족히 허리까지는 내려오고 가죽잠바에 서늘한 눈빛으로 중무장한 그룹사운드까지 정말로 노래좀 한다 하는 사람들은 다 모여있는 듯 했다. 쓰레기통에는 생계란 껍질이 수두룩하게 쌓여있었고 1차 예선임에도 불구하고 응원단들도 꽤 많아서 심지어는 피켓까지 만들어온 팀들도 있었다. 홀 안으로 들어서자 벌써 심사가 진행이 되고 있었는데 심사위원으로는 배철수 선배와 지금은 이대 신방과 교수가 된 주철환 피디가 기억나고 그 외에 2명이 더 있었다.

실외에서의 풍경은 저리가라 할정도로 심사장 내에서는 정말 재미있는 해프닝이 많았는데 야한 옷차림으로 중무장하고 미인계로 도전하던 한 여성 듀오( 노래 시작부터 끝까지 한번도 관객쪽은 쳐다도 보지 않은채 줄곤 심사위원 바로 앞에서만 노래를 했던 관계로 앞모습을 볼수 없었던 것이 매우 유감이었다), 제발 노래를 끝까지 들어달라고 애타게 애원하던 한 경상도 학생 -멀리서 왔슴니더... 끝까지 들어주이소...(사실 지원자가 워낙 많은지라 1절도 채 듣지 않은채 순서가 지나가곤 한다.) , 산더미처럼 미디 장비를 싣고 왔지만 정작 작동을 안해서 그냥 돌아가야 했던 팀, 테입에 반주테입을 녹음해 왔는데 음질이 너무나 조악해서 안타까웠던 여학생.... 가장 불쌍했던 인물로는 서울 모 대학 그룹사운드의 기타리스트였다. 산더미같은 장비를 심사위원들의 눈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긴 시간을 들여 세팅을 하더니만 마침내 멋지게 무대에 섰으나 노래가 1절이 다 끝나가는데도 무게만 잡고 연주를 할 생각을 안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간주부분부터 기타가 나올 예정이었나본데 나와 동욱이는 말할것도 없고 모든 관객들이 안타깝게 그의 플레이를 기다렸으나 결국 그는 줄한번 튕겨보지 못하고 애석하게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 2차 예선에선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 무대를 위해 얼마동안 연습을 했을지... 참고삼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혹시 가요제에 출전할 의향이 있는 분들은 앞부분에 신경을 좀 쓰길.) 사실 이 모두가 서로에게 경쟁자라면 경쟁자이기도 했지만, 순서가 바뀔때마다 아낌없는 박수와 격려를 주고, 혹은 함께 안타까워 하고 아쉬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우리 모두 음악을 사랑하는 순수한 학생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4.

1차 예선에 합격하고 또다시 정동문화센터로 가는길은 한결 발걸음이 가벼웠다. 30명을 추려냈던 1차에서 합격했다는 자부심과 더불어 얼떨결에 치루었던 1차예선과는 달리 맹연습을 한지라 나름대로 자신감도 있었다. 우리와 같은 날에 치루었던 지원자들은 대부분 탈락한 듯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수백명중 골라낸지라 제법 프로답게 꼼꼼히 준비해온 팀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앞부분이었던 순서를 무난히 끝내고 우리는 그냥 발걸음을 돌렸는데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진 바 끝까지 남아서 마음을 졸일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겉으론 태연한 듯 했으나 서로 마구 마구 마음이 들떠서 정동의 조그마한 만두국집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안정시켰던 기억이난다. ( 신해철도 강변가요제 예선에서 떨어졌었데 뭐..등등등...)

본선 진출자 발표날. 아침부터 수업이 있어서 학교를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에서 막 내려서 수업 들어가기 전에 방송국에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이며 공중전화를 찾고 있었던 중이었다.

갑자기 삐삐가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요즘은 핸드폰이 난무하지만 93년도인 그당시만 해도 삐삐는 첨단 이동통신 장비였는데 그에 발맞춰 우리는 서로 우리만의 삐삐 암호를 몇 개 정하여 유용하게 쓰고 있던 차였다. 물론 삐삐를 친 주인공은 동욱이었다. 전화번호도 없이 그저 동욱이가 보냈다는 의미만을 담은 암호숫자가 10 초 간격으로 무더기로 쏟아져내렸다. 같이 얼싸안고 한바탕 굴렀어야 했을 그 순간에, 우린 서로의 목소리조차 듣지도 못한채 동욱이는 학교 어딘가의 공중전화앞에서 나는 신촌 거리 한복판에서 마치 온세상이 우리것인냥 환호했다.

과친구들은 강의실 칠판에 커다랗게 '축 TV출연' 이라고 휘향찬란한 색분필로 써놓고서는 수업때마다 교수들한테 자랑했다. 덕분에 나는 몇번이고 앞에서 노래를 해야하는 수고를 겪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1차 예선을 시작할때부터 잠시 외국에 계셨었던 부모님께선 어리둥절해 하시며 정말 그럼 티비에 나가는거냐고 물어보시더니 별 말씀 없으셨다. 사실 나는 부모님이 반대하실까봐 적잖이 걱정했었는데 의외로 신기해 하시며 이왕 나간거니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고등학교때 음악한다고 날뛰더니 소원풀이 한번 하는구만 하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어쩌면 대중 음악과 티비쇼에 통 관심이 없으셨던 부모님으로서는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으셨을수도 있다. 내가 본선에 붙었다고 처음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께서 한 첫마디가 니가 노래를 해? 였으니까 말이다. (물론 첫마디가 수업은 빠지지 마라 였던 동욱이 어머님보단 보다 관심이 있으셨던 건 확실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