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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l 2000.08.17
나의 영어 이야기

"우리나라에서는 영어 교육을 매우 중요시 하고 있다. 우리땐 중학교때부터 영어 과목이 있었지만 요즘은 초등학교도 영어 수업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극성 부모들은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조기 영어 교육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한다고 들었다. 그 애들이 내 나이가 되어있을 무렵쯤엔 나같은 고민을 좀 덜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처럼 중고등학교 내내 죽어라 문법과 독해에만 매달려온 우리 학력고사 세대들은 정작 미국땅을 밟아도 caption에 의지해서나 티비를 겨우 볼 수 있는 신세일 것이다. 조금 늦은 나이에 대학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된 나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죽어라고 공부에 바쳤던 나의 6년간의 청춘이 아깝기 짝이없다. 이렇게 이해타산적으로 계산하는 건 좀 우습긴 하지만 지금와서 그 시간들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1. 대학가요제 출전 자격을 주었다.

2. 떳떳하게 1년동안 신나게 놀 수 있는 구실이 생겼다. (대학에 붙고 나서)

3. 따로 공부 안해도 유학올 때 토플 시험 요구점수를 가까스로 넘길 수 있었다. ( 무지 낮은 점수임)

4. 버클리에서 예전 연세대에서 수강했던 교양과목을 12 학점 trasfer 할 수 있었다... 라는 것 외에 별로 뾰족하게 생각이 안난다.

물론 나 같은 경우엔 대학을 중간에 포기하고 진로를 180도 급선회 한지라 좀 예외의 케이스가 될 수 있을는지 모르겠으나, 설사 대학전공을 살려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살면서 화강암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곡선과 원사이에 접선을 그렸을 때 공식은 어떻고 따위가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잡다한 상식을 물어보는 퀴즈쇼에 나가서 일확천금을 노릴것이 아니고서야 (사실은 그러한 퀴즈쇼들을 위한 책들도 책방에 가면 널려있다.) 그저 살다가 가끔씩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영화나 책을 읽으며 '아! 마저 옛날에 얼핏 배운 것 같은 기억이 있기도 해...' 하고 반가워 하는 순간이 더럿 있을 뿐이다. 물론 중고등교육의 전체를 송두리째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수학과목은 논리력과 추리력을 향상 시켜준다는 것에 동의하고 국어과목을 열심히 안했다면 아마 나는 지금쯤 이 글을 쓰면서도 하다못해 철자법 때문에라도 적잖이 고생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일 수 있는 그 시기에 과연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였더라면 좋았을까 라는 효율성 측면에서 생각해봤을 때 나는 내가 보낸 그 6년의 시간들이 너무나 아까워진다.

이런 보상심리가 가장 강력하게 들었을때가 바로 미국에 처음 와서 언어문제에 부딪혔을 때였던 것 같다. 바쁜 스케줄 탓으로 유학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했던 나는 고작 한달동안 영어학원을 다녀 봤다는 것으로 불안한 마음을 위로하며 한국을 떠야했다. (사실 한달동안의 학원 생활은 오히려 나의 불안 심리를 가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왜였는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나는 영어를 꽤 잘 할 수 있을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자신감은 학원에 처음 면접보러가던날 여지 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Your English is so so so baaaaaaaaad!""

""....""

""언제 유학간다구요?""

""다음달에요......-.-;""

""참나...한달밖에 없네요....이를 어쩌나.....""

""-.-;.......""

""기초부터 하자니 시간이 없고 그렇다고 어려운 클래스에 집어넣을 수도 없고"" ( 여기서부터 한국말로....그때가지만 해도 난 그가 한국말 못하는 교포거나 다른 아시안계의 외국인줄

알았다.)

"" 그냥 열심히 해보면 안될까요? (한국말로..조금 용기를 내어)""

말도 안된다는 듯이 쳐다보며 잠시 나를 아래위로 훑는다.

"" 전람회 맞죠?""

"" 허거걱...""

그래도 한가지 위안은 학교를 시작하기 전에 보스톤에서 3개월간 어학연수 코스를 신청해 놓았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다행히도 그 학원엔 한국 학생이 한명도 없었다. (한국 학생이 한명도 없었다는 어학원은 여태까지도 들어본 바가 없다. 아마도 방학기간이 아니었는데다가 아이엠에프의 영향도 컸을 듯 싶다.) 한국 학생이 없었다는 것은 나로선 매우 중요한 의미였다. 한번쯤 회화학원을 다녀본 사람들은 경험해봄직할만 한데 나처럼 영어를 기초부터 다져야하는 레벨의 클래스는 매우 유아적인 방법으로 수업이 진행된다.(특히 회화시간).

예를 들어 초등학교때 졸업했던 갖가지 게임들을 통해 어휘나 숙어 익히고, (사람수보다 하나 뺀 숫자의 의자 주위를 돌다가 의자에 못 앉은 사람이 술래가 되는 것. 가끔씩 그 게임에 몰두해 있었을 나를 상상해보면 지금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내용의 질문과 답을 한국사람들과 돌아가며 주고 받아야 했다면 내가 딱히 연예인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무진장 낯간지러운 일이었을게다. 그렇다고 내가 '유치원'을 3개월 다닌 것만은 아니었다.

독해 수업 시간에선 주로 미국의 시사주간지나 신문을 읽고서 토론을 벌이는게 주 일과였는데 평소 시사에 매우 약한 나로선 꽤 벅찬 시간이었다. 또 하루에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자유주제로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약 30분 분량의 주제를 놓고 혼자서 떠들어야하는 숙제여서 매우 겁먹었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오늘의 요리' 라는 주제로 미역국 만

들기에 대한 강좌를 했었다.) 한달쯤 이렇게 학원을 다니고 나자 자신감이 늘기는커녕 점점 겁을 집어 먹게 되었다. 한국에서 의례 사람들이 말하길 한 6개월동안 미국에서 어학연수하면 왠만큼 알아듣고 말할 수 있다고들 하던데 별반 나로선 달라진바도 없고 달라질 가능성도 없어보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잠깐 영어 얽힌 에피소드 하나.

보스톤에서 집을 구하고 전화를 놓은지 며칠 안되었을때다. 혼자서 밥을 해먹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당연히 여보세요 라고 받았는데 그쪽에서는 '............ Mr kim? '하고 물어왔다. 전화를 놓은 이후 처음으로 외국사람한테 걸려 온 전화였다. 나는 겨우 Mr Kim만 알아듣고 'speaking' 이라고 여유있는 척 대답했다. 그랬더니만 갑자기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초고속 스피드로 말을 끊을 여유조차도 없이 한 3분동안 다다다다 쏴대는 것이었다. 나는 그 여자가 말을 끝내길 기다려 사실은 미국 온지 얼마 안되서 영어를 잘 못한다고 얘기할 참이었다. 열심히 그 말을 어떻게 얘기할까 머리속으로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여자가 말을 의문문으로 끝내는 것이었다.

'솰라 솰라..........솰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나는 그만 얼떨결에 'Yes'하고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이 여자는 'O.K Thank you. Have a good day!'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 후로 며칠동안 내가 도대체 무슨 질문에 커밤라고 대답을 한건지 몰라서 너무 너무 괴로웠다. 혹시 미국은 이렇게 전화해서 내가 'Yes' 하면 자동적으로 물건이 턱하고 날아오는 것은 아닐까에서부터 시작해서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물론 챙피해서 그땐 아무한테도 말은 못했지만 지금도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혹시라도 미국사람한테서 전화 받을 일이 생긴다면 절대 알아듣는 척 하지 말 것. 쉽진 않겠지만.

두달째 수업이 시작될 때 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은 버리기로 했다. 목표를 높게만 잡을것이 아니라 지금 나의 처지를 인정하고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전환했다. 그래서 같은 어학원 학생중 그래도 영어를 꽤 잘한다고 생각되는 아이들과 어울리며 주의깊게 그들이 어떻게 회화를 구사하는지 살펴보았다. 그랬더니만 그들은 아주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르는 단어나 표현을 쓰는적이 없다라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내가 억지로 짜맞추는 문장보다 그들의 문장은 훨씬 간결하고 쉬우며 의미전달이 확실했다. 한국어의 특질인 '돌려 말하기' '죽을때까지 이어말하기' '은유를 많이 사용하기' 등등의 화술을 그대로 직역하여 꿰맞추는 나의 영어는 너무 길고 복잡했다. 말하는 나도 힘들뿐만 아니라 듣는 그 들도 이해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혹시 무식해보이지는 않을까, 혹은 좀더 재밌고 위트있게 말하고 싶은데, 이런 상황에선 보다 점잖고 무게있는 화술을...등등의 사치스러운 생각들이 나의 어설픈 발음, 부족한 어휘와 더불어 최악의 상황을 낳았던게 아닌가 싶다.

쉽게 영어를 하자!

이런 결론을 얻고 나서부터 나의 영어 공부는 단어나 숙어를 외우는것보다 생각을 단순하게 하기쪽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끙끙대면서 들여다보던 CNN뉴스를 제끼고 어린이를 위한 만화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똑같은 말을 가장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연구했다. 그러려면 생각자체를 쉽게 해야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선 대답할 때 '그런 것 같아요' 라는 말을 참 많이 썼었다. 사실은 예 라고 대답해도 될 것을 말을 끝내는 그 순간까지도 조심스레 번복의 여지를 남겨 놓는 것이다. 영어로 말할땐 그냥 단순히 정리한다. 'Yes' or 'NO'. 물론 '그런 것 같아요' 라고 영어로 대답할 수도 있고 그럴 상황도 분명 많이 있겠지만 이렇게 심플하게 결정해버리는 것이 훨씬 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로 미국사람들은 이렇게 심플하게 산다. )

두 번째로는 문장을 될 수 있으면 짧게 만든다. 한국 사람들은 토를 달거나 무언가의 여지를 남겨놓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고생하면서 배워야했던 수많은 고급 문법들이 사실상 회화에서는 그렇게 많이 쓰이지 않는 것 같다. (어쩜 나의 영어 수준을 고려해 사람들이 짧게 간결하게 말해줘서 내가 그렇게 느끼는거라는 생각이 불현 듯 들기도 한다.) 처음에 내가 영어를 할 때 '관계대명사'라던지 'That절'을 이용해서 길길이 말을 늘리다가 수습이 안되서 애초에 뭘 말하려고 했었는지조차도 까먹어버린적이 종종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차라리 여러개의 짧은 문장으로 나누어 버려서 말하곤 하니 훨씬 편했다.

생각을 쉽게 말을 짧게.

이런식으로 영어를 하다보니 점점 자신감이 붙게 되었다. 더듬거리던 영어가 문장이 짧아지고 단어가 쉬워지다 보니까 느리지만 부드러운 제 나름대로의 템포와 리듬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쓰고보니 영어를 마치 잘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이건 전적으로 그 전에 비해 그렇단 얘기다.) 식당이나 가게에 가서도 덜 당황하게 되고 때로는 농담도 몇마디 던지는 여유도 갖게 되었다.

3달째에는 같은 반 친구를 룸메이트로 한달 동안 들였다. 히로라는 일본 친구 였는데 영어도 아주 잘 할뿐더러 무엇보다 사람이 너무 좋았다.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 룸메이트를 했던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론 서로의 영어실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원래의 목적은 생활비를 절감하자는 차원이었다. -.-;) 히로와 나는 영어 공부를 해온 방법과 하고 있는 방법도 너무 상이해서 참 재미있었다. 나는 중고등학교때 다져진 문법이나 독해실력을 바탕으로 꾸역꾸역 회화를 하고 있었던 반면 히로는 수십차례의 해외여행을 통해 몸으로 얻어진 생활영어를 바탕으로 부족한 문법과 독해를 때워가고 있었다. 또 나는 국내에서도 유명했던 횲riends'라는 시트콤을 매일 녹화해서 알아들을때까지 보기 ..라면 히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하며 CNN News시청하기와 지하철에서 신문 읽기를 하루도 거르질 않았다. 이렇게 써내려가다 보니 우리는 참 잘 맞는 궁합이였던 것 같다. 서로의 덕분에 나는 시사문제를 토론하는 수업시간을 보다 흥미있게 보낼 수 있게 되었고 히로는 토플 문법 시험에서 향상된 점수를 얻었다.그후로..... 3개월의 어학연수가 끝나고 난 뒤 정작 버클리에 입학하고 나서는 나의 영어는 그 자리에 멎다 못해 퇴보의 가까운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일단 한국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국말을 거의 입에 떼지 못하는데다가 선생이나 미국 학생들이나 워낙 외국 유학생들에게 익숙한 나머지 늘 영어를 못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나 준비가 확실했다. 수업은 물론 영어로 진행되지만 음악은 만국 공통어라 왠만한 기초적인 영어 실력만 있으면 문제 없을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수업시간의 끊임없이 질문하는 적극적인 학생이라면 얘기가 또 다르겠지만 보편적으로 한국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조용하다. 학교를 다니면서부터 거의 티비를 볼 시간이 없어지게 된것도 큰 몫을 한 것 같다. 어학원 다닐때는 한 티비프로를 녹화해 두고 여러번 반복해서 보기등의 학습을 했었는데 지금은 영화 볼 시간조차도 별로 없으니 날잡아서 디비디라도 빌려 놓으면 여지 없이 캡션에 의지하곤 한다. 이러다간 미국에 5년 있어도 영어는 제자리 걸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