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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l 2000.11.27
나의 학력고사 이야기 1

"늘 그렇지만 1992년 겨울, 학력고사가 치러진 그 날도 무척 추웠다.

일기예보도 아랑곳하지 않고 학력고사 날이면 어김없이 추운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신기하다. 과학적으로도 증명할 방법은 물론 없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도 그 날을 기억할 때면 매서운 날씨 덕에 보다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아련하게 간직할 수 있다 말하면 너무 감상 주일까?

나는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였다. 만약 떨어지고 재수를 하게 되면 이듬해엔 너무나도 생소한 수학능력평가라는 새로운 시험제도에 응해야할 참이었다. 지금 고2 학생들은 수능을 대비해서 그 나마 준비를 해왔을 터이므로 재수는 매우 불리했다.

지난 6년 동안이 겨우 오늘 하루에 의해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이 참 우스웠다. 늘 비슷하게 살아온 하루하루지만 그날만은 유독 똑같은 시간의 하루의 단위가 마치 이승과 저승에 반쯤 걸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 갓 올라온 해가 저물 때쯤이면 나는 건널 수 없는 강을 이미 건너고 말았을 그럼느낌이었다.

학교까진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 그땐 자기가 지원한 대학에서 시험을 봤다. ) 어머니가 정성 들여 싸주신 따듯한 보온 도시락을 메고 지하철에서 들여다 볼 용으로 만든 암기과목 요점정리 노트를 쥐고선 집을 나섰다. 아버지의 격려말씀을 뒤로한 채 어머니와 나는 말없이 묵묵히 걸었다. 지하철역에 가까워질수록 나와 같은 '무리'들이 속속 눈에 띄었다. 목도리와 오리털 잠바로 똘똘 말린 채 어깨엔 보온밥통 한 손엔 요점정리노트.

운 좋게도 자리가 나서 어머니와 함께 앉았다. 그러나 곧 어머니는 서서 가는 수험생에게 자리를 양보하셨고, 고맙다는 가벼운 인사와 함께 내 옆에 앉은 여학생은 무섭게 국사 연도표를 중얼거리며 외기 시작했다. 나도 어머니를 안심시켜드리기 위해 뭔가 열심히 외는 척은 했으나 실상 내가 한 생각들은 만약 떨어지면 어떻게 할까. 재수를 할까. 유학을 가겠다고 떼를 써볼까. 후기대학을 갈까...뭐 이런 걱정들이었다. ( 이런 상황에서도 무섭게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크게 될 사람인 것 같다.)

학교에 도착하니 평소 신문이나 방송에서만 보던 풍경들이 연출되고 있었다.

전국 방방곡곡의 고등학교에서 올라온 수험생들, 고등학교 동문회에서 마련했을 휘황찬란한 학교 플랜카드들과 따듯한 커피한잔을 먹여서 들여보내겠다는 일념으로 그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파이팅을 외쳐대는 후배 학생들로 가득 채워진 캠퍼스는 흡사 축제 분위기와도 같았다.

어머니와 공대건물 입구에서 헤어진 후, 수험표를 손에 쥐고 해당 수험실을 찾아갔다. 뒤쪽 구석에 썩 괜찮은 자리였다.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진 다들 알 것이다. 예를 들어 난로 바로 옆에 앉으면 너무 더운 나머지 머리가 아파서 제대로 시험을 볼 수가 없다.) 자리를 잡고 약간 무거워진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능세대는 경험할 수 없는 기분이라 생각되는데, 그 때 그 교실에서 시험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은 과를 1지망으로 지원한 사람들이였다. 즉 말하자면 나의 경쟁자들인 셈이었다.

2.9대의 1의 경쟁률을 뚫어야하므로 3명 건너 1명만 이 캠퍼스에서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난 그 친구들이 경쟁자라 느껴지기보다는 이중에서 누가 나와 함께 대학을 다니게 될까 에 더 중점을 두었던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그런 어이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왔냐고 묻겠지만 꼭 내가 시험을 잘 볼거라는 생각에서라기 보단 내가 대학을 붙는다면 이중 3분의 1은 어쩌면 평생을 함께 할 나의 대학지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훨씬 더 흥미로웠던 것일테다.

쥐죽은듯이 고요할 것이라 예상했던 수험실의 분위기는 웬걸. 주로는 재수생들의 리드로 왁자지껄 정신 없었다. 특히나 종로학원 출신들의 재수생 혹은 삼수생들은 약속이나 한 듯 무스탕을 빼 입고 머리엔 무스를 반지르르하게 바르고 와서는 난로가에 모여 앉아 '넌 삼수야 임마....니가 여길 어떻게 붙어' ' 너나 잘해 ' 등등의 농담 따먹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쓰디쓴 패배를 맛보았던 경험자로서의 여유였는지, 원래 성격들이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암기과목 한자라도 더 들여다 봐야되는게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와 내 주위의 '털목도리 오리털 돕바 파'들을 놀래키기엔 충분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그 이듬해 개학을 했을 땐 그들의 모습은 한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

막상 시험이 시작되고 나서부터는 문제를 푸는데 정신이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워낙 긴장해서 그랬는지 별로 기억이 잘 안 난다. 조각처럼 기억되는 장면들은 1교시 국어 국사 윤리시험을 끝내고 화장실을 가는데 아이들끼리 한문 답 맞추는걸 듣고 경악했던 일과 3교시 지구과학 문제를 검산하다가 계산 미스를 발견하고 답안지 내기 직전에 고쳐 적었던 일, 내 옆에 앉았던 너무나 착실하게 생겼던 여학생의 수학 주관식 답안지를 슬쩍 훔쳐봤는데 나와는 너무 다른 답들이어서 무척 놀랐던 일 등등이 단편적으로 스친다. 참고로 말하자면 한문은 5문제 모두 다 틀렸고 (화장실 갈 적만 해도 내가 맞았을 꺼라 생각했다.) 지구과학 주관식 문제가 나를 대학에 붙게 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으며, 내옆에 앉았던 그 여학우는 훗날 그녀가 2차지망으로 선택했던 과에 다니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93년도 학력고사의 특징을 간단히 말하자면 올해 수능과 매우 흡사한데 문제가 너무 쉬워서 전체 평균이 20점씩 올랐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이 막 끝나고 난 소감은 '아...난 떨어졌구나..' 였다.

특히 자신있었던 영어과목의 주관식 몇 개가 확실히 틀렸다는 걸 그 자리에서 확인하고 난 후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침울하게 공대 건물을 빠져나오자 눈앞에 너무도 극단적인 희비극이 연출되고 있었다. 불온 삐라 날리듯 어느새 벌써 나온 시험 답안지가 여기저기 바람에 뒹굴고 있었고 한 여학생은 친구를 부여잡고 엉엉 울고 있는가 하면 어떤 남학생은 '영어 다 맞았다'를 외치며 방방 뛰고있었다. '그 영어 다 맞았다'에 또다시 의기소침해진 나는 기분 상으론 어디 덕수궁이라도 가서 혼자 배회했어야 할 터이지만 집에서 초초하게 기다리실 부모님들을 생각해서 무거운 발걸음을 신촌 역으로 옮겼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