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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l 2004.05.04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

내가 운동하는 스포츠 센터엔 개인용 락커가 있다. 거기에다가 샴푸 및 로션 등등의 세면도구와 조깅화, 수영복 등등을 넣어놓고 다니기 때문에 락커 키가 없으면 기껏 먼 걸음을 왔다가 비누로 머리만 감고 돌아가야 한다. 오늘은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던지라,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셔츠단추를 풀어제끼는 그날을 상상하며 가까스로 집을 나섰는데, 락커 키를 집에 두고 온 사실을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건망증이 심한 건 아니지만 여러번 이런 경우가 있었던지라 그때마다 괴로워하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여기까지 우산을 쓰고 걸어온 노고가 너무 억울해서 같이 운동하는 선배가 혹시 있으면 밥이라도 같이 먹어야겠다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형 운동하고 있어요?”

“어, 나 방금 끝나고 나와서 집에 가고 있는데?”

“아...그렇구나. 형 그럼 나랑 저녁이나 먹죠?”

“난 배가 안 고픈데? 넌 오늘 운동 안해?”

“아.... 나 운동하러 왔는데 락커키를 두고와서 그냥 형 운동하고 있으면 기다렸다가 밥이나 같이 먹으려고 했지.”

“락커키?”

“응. 나 락커에 운동화랑 다 있걸랑. 맨발로 뛸 순 없잖아요”

“그거 프론트에 얘기하면 마스터 키 주잖아? 그걸로 열면 돼!”

“.......................................정...말...이...야?”

“몰랐어?”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프론트 데스크에 가서 물었다.

“저기...제가 락커키를....집에 두고 와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마스터키 드릴게요. 여기요”

나는 오늘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보다는,

그동안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수많은 날들에 대한 가슴 끓는 억울함과, 원본 키가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나의 어리석음에, 그리고 키를 놓고 온 것은 내 잘못이다라는 원칙론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었던 답답함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요령과 융통성이 필요하고들 한다.

근데 왠지 나는 이런 것들에 대해 부정적인 의미를 마구 부여하며 살아온 듯 하다. 이 두 단어의 반대 의미어는 ‘고지식’ 혹은 ‘답답’이 아니라 ‘정직’,혹은 ‘결백’ 이라고 말이다. 부드러운 미소와 화려한 말솜씨로 안 되는 것을 되게 만드는 사람들 보단, 뒤에 세워주겠다는 걸 마다하고 기나긴 줄 끄트머리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마음이 편한 내가 훨씬 정직하고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총총걸음으로 사라지는 그들을 볼 때에도 전혀 마음의 거리낌이나 부러움같은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부로 ‘요령’과 ‘융통성’에 대해 마음의 문을 활짝 활짝 열기로 했다.

사방이 막혀 있어서 빠져나갈 곳이 없다면, 공중으로 날아오를 수도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