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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l 2004.05.14
일본여행기 #4 '니씨 마츠이다의 시골집'


3박 4일 여정의 전초전이 너무 길었다. 사실은 주노가 머물고 있는 시골집에서 뒹굴 거리는걸 목표로 무작정 표를 사서 비행기를 탔던 건데, 이래저래 하다보니 도쿄에서 거의 이틀을 머물게 돼 버렸다. 일본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우리를 그냥 돌려보내기가 못미더웠는지 창학형이 우에노역까지 굳이 동행해 주신다. A4용지에 빽빽하게 적어놓은 기차 시간표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집에 돌아갈 궁리를 하고 있는 주노가 안쓰러웠던 게다. (하지만 나는 주노가 성전처럼 모시고 다니는 그 기차 타임 테이블의 위력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일본의 기차나 지하철은 1초도 늦지 않는다. 기차역의 일본어를 못 읽는다 하더라도 여기가 내려야할 역인지 지나친 건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도착시간이 되었는지 아닌지만 시계만 보면 되는 것이다.) 우에노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창학형이 형수님께 전화를 건다. 유부남의 삶이란 이런것이다라며 머쓱하게 웃는 창학형. 그러나 수화기 건너편의 형수님과 형의 대화는 따듯하기 그지없다. 3살 난 새미가 잠들고 난 후에 들어오라고 형수님이 그러셨나보다. (새미는 아빠가 있으면 도통 잠자리에 들 생각을 안 한다고 한다.) “9시 반쯤에 들어오라고?” 라며 시계를 들여다본다. 지금 시각은 8시 10분. 갑자기 무언가 계시라도 받은 양 나의 머리가 재빠르게 돌기 시작한다. “형. 제가 같이 주노 집에 가자고 형을 꼬시면 형수님이 절 미워하실까요?” 그 묵묵한 주노도 말을 거든다. “형 주무실 방은 있어요.” 그럴 수는 없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창학형이 잠시 망설임의 시간을 갖다가, 결국 형수님께 다시 전화를 하고 함께 기차에 오르기로 결정을 내리는데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모름지기 설득은 타이밍이다. 상대방이 망설이고 있을 때 기회를 절대 놓치면 안 된다. 새벽기차를 타고 올라오겠다는 형의 말에 주노나 나나 그렇게 될 순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한다. “형 기차는 아침 6시부터 계속 다녀요!” 우에노에서 기차를 타고 다카사키 역까지 가는데 1시간 반이 걸렸다. 도쿄에서 40분 걸리는 곳에 산다던 주노의 말은 완전 거짓말 이였다. 본인은 거짓말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신칸센을 타면 45분이면 다카사키역까지 간다고. 그러나 문제는 이미 왕복표를 끊어온 주노덕에 우린 일반 기차를 타야했으며, 더더욱 중요한 사실은 다카사키 역에서 다시 기차를 갈아타고 30분을 더 가야한다는 사실을 살짝 숨겼다는 사실이다.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냐고 신경질을 냈더니 아무 말 않고 한참 있다가 한마디 한다. “사실을 말하면 안올꺼라고 생각했어요.” 음...얼마나 혼자 그 시골구석에서 외로웠으면 이랬을까 싶어서 참기로 한다. 창학형은 옆에서 우리의 언쟁을 매우 즐기고 계신 눈치다. 어쨌든 이래저래 예상치도 않았던 우발적 여행에 동행하게 되었으니 유부남으로선 매우 신선한일이 아닐 수 없겠다. 다카사키 역에 한 치에 오차도 없이 정확한 시간에 도착해서 옆 플랫폼으로 가서 기차를 갈아탄다. 마치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바로 출발하기라도 하는 듯 정말 정확하고 짜임새 있는 스케줄이다. 이번 기차는 밤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다. 도심에서 퇴근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빠지고, 시골 아저씨들 한 무리와 우리만 달랑 자리를 잡았다. 해는 이미 오래전에 넘어갔고, 비까지 내리는지라 까만 창문들엔 기차 안의 모습만 비쳐서 흡사 영불 해협을 건너는 해저 터널 안을 지나고 있는 듯 하다. 창밖이 보이질 않으니 점점 깊숙한 미궁 속으로 달리고 있는 것 같기만 하다. 알 수 없는 곳을 향하는 불안함과 동시에 묘한 설렘과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감이 꿈틀댄다. “생각보다 먼 곳이었구나. 미리 알았으면 할 수 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거군” 창학형이 중얼거린다. 주노는 계속 딴 데만 보고 있다. 정말 조그마한 역이다. 역이라고 하기엔 조그마한 옥외 지하철역이라고 하는 게 나을 법 싶은데, 표검사하는 역무원 아저씨가 없다. 근무이탈인건지, 화장실에 가신건지, 후불로 기차 값을 지불할 요량이었던 창학형과 기차 안에서야 표를 잃어버린걸 알고 낙심했던 주노에겐 뜻밖의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도 없는 게, 처음엔 두 사람 몫의 표값이 굳어졌다고 좋아하다가 이럴 줄 알았으면 내 표도 사지 말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표없이 기차타는건 아무리 후불제의 시스템이 있다하더라도 나로선 매우 껄그러운 일이다. 미리 전화로 예약해 놓은 택시가 정말 때맞춰 헤드라이트를 밝히며 다가온다.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 가로등도 없는 시골 길을 달려 드디어 목적지 도착. 너무나도 어두워서 당최 동네의 심지어 골목의 외형조차 파악이 안 된다. 주노가 먼저 뒷문으로 들어가서 열어준 현관 안에 들어서자 아 드디어 먼 길의 끝이 여기구나 하며 몸이 스르르 풀린다. 일본식 전통 가옥 형태와 서구식을 적절히 혼합해 놓은 매우 훌륭한 집이다. 1층은 다다미를 기본으로 한 거실과 고타츄가 있는 작은 거실이 현관을 사이로 양옆으로 나뉘어져 있고, 부엌이나 화장실은 현대식으로 편리하게 모든 시설을 갖추고 있었으며 나무 계단으로 이어져있는 2층에 방이 2개가 있다. 거실에는 피아노도 있고 불상을 모셔두는 작은 신전(?)도 있다. 부엌 옆에 작은 거실에 고타츄라는 것이 있는데,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다다미 마루에 4각형으로 구멍을 뚫어서 거기에 화로를 놓고 (이집에선 전기스토브가 깔려있다.) 그 위에 정사각형의 큰 평상이 붙박이로 올려져 있는데, 특이한 것은 그 상 주위의 4면에 이불 같은 것이 붙어 있어서 그것을 들추고 앉아서 다리를 바닥에 넣고 뜨듯하게 발을 데우며 오순도순 얘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하는 것이다. 이 집에 있는 것은 좀 부잣집에서나 볼 수 있는 장착형 고타쥬이고 일반 서민들에게는 평상 아랫면에 화로가 부착이 되어 있어서 어디로나 들고 옮길 수 있는 포터블 형식이 보편화 되어 있다고 한다. 옛날 일본에서는 추운 겨울철을 고타쥬를 중심으로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먹으며 지냈다는데, 앉은 자세에서 스르르 낮잠을 자기에 아주 안성맞춤이라며 창학형이 몸소 시범을 보여준다. 어제 호텔에서 마시다 남은 꼬냑과 주노가 쓱싹쓱싹 준비해온 토마토와 자몽을 안주 삼아 두런두런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깊고 고요한 시골의 밤의 정취에 점점 눈이 감긴다. 잠시 정신이 들어 살펴보니 아까 술 마실 때의 고타쥬 안에 발을 담근 자세 그대로 쓰러져있고 몸에 담요가 덮여져 있다. 그 자세로 그대로 쓰러져 낮잠을 자게 된다라던 창학형말이 떠올라 눈을 감은 채 실실 웃다가 다시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