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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l 2004.10.11
유럽 여행기 #8 '하얀 지중해의 도시 Mijas'


사실 스페인 여행의 아이디어는 애초에 내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이번 가을엔 스페인 여행을 할까해.” 하는 동생 지현의 말에, “그럼 나도!” 하며 이렇게 따라오게 된 것이어서, 여행의 행로나 계획 같은 것은 모두 그녀에게 일임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녀가 스페인에 꽂혔던 이유는 여러 가지 있었겠지만, 그중 하나가 안달루시아 지방의 작은 마을들을 거닐면서 예쁜 사진을 많이 찍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여행 가이드북에 실려 있는 사진들을 훑어보며 몇 개 물망에 올랐던 도시가 있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상 결국 Mijas를 둘러보기로 결정을 본 것이다. 그렇지만 또 역시 미하스까지 가는 길은 그리 수월하지만은 않다. 일단 유명한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직행버스가 없다. 친절하게 같이 교통편을 알아봐주던 호텔 직원도 이 사실에 깜짝 놀란다. (이 호텔에서 미하스를 찾는 관광객은 우리 뿐이었던지, 아니면 다들 차가 있었나보다.) 결국 한 시간쯤 걸려 수소문한 끝에 Fugengilo라는 곳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가야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여간 귀찮지가 않다. 운전해서 직접 가면 30분이면 가는 거리인데 1시간 반은 걸리게 생겼다. 국제 면허증을 가지고 오지 않은 걸 너무 너무 후회했지만, 또 막상 차를 렌트한다고 해도 길도 찾아야하고, 주차도 해야 하고 신경쓰이는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유럽에선 아직도 스틱으로 운전하는 자동차들이 보편적 이여서, 오토매틱 자동차는 귀할 뿐만 아니라 렌트비도 비싸다. 어쨌든 이러저러한 모든 정보를 얻은 후 결국, 버스를 타고 아침 일찍 떠나기로 한다. 마르베야 호텔의 수영장과 따듯한 햇살이 너무 마음에 들어 살짝 게을러진 나는 그냥 오늘쯤은 뒹굴 거리며 쉬는 게 어때 하고 동생을 달래 보았으나, 미하스를 가지 않게 되면 스페인 여행을 온 의미가 없다는 단호한 그녀의 말에 (사실은 그럼 오빤 여기 있어, 나 혼자 갔다 올게 라고 말했음)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서 호텔을 나선다. 버스는 Fugengilo까지마저도 직행이 아니다. 동네 동네, 해수욕장마다 거의 10분에 한번씩 서는 마을버스이다. 해변에 드문드문 형성되어 있는 해수욕장에서 사람들이 수영을 하러 혹은 수영을 마치고 각자의 호텔로 돌아가려 이용하는 버스노선인 듯 싶었다. 푸엔지로에서 5분정도 기다렸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산등성이를 오르다보니 언덕쯤에 미하스가 보이기 시작한다. 지도가 필요 없는 아주 작은 마을인데, 온 마을의 집들이 지중해 특유의 하얀 회벽으로 칠해져 있다. 이런 모습은 그리스나 이탈리아의 남부지방에서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강렬한 햇빛을 반사하려는 과학적인 이유로 그런 것이겠지만 어쨌든 우리 같은 관광객들에겐 너무나 예쁜 풍경을 선사해주는 귀중한 관광 자원이 된 셈이다, (실제로 이런 도시엔 정부에서 일년에 한번씩 페인트비 보조금이 나온다고 한다.) 하얀 벽도 하얀 벽이지만 알록달록 원색으로 칠해진 대문과, 아담하고 앙증맞게 창문마다 장식해놓은 작은 화분들, 꼬불꼬불 복잡하게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골목이 너무나 예쁘고 이국적이어서, 혼자라도 가겠다던 지현이를 정말 혼자 보냈으면 평생 후회할 뻔 했겠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되었다. 흥분한 지현이는 얼굴의 생기를 가득 띄고서는 이것저것, 이곳저곳,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대기에 바빴다. 이곳에선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까지도 그냥 그림이 된다. 어쩌면 마을 회관에서 '빨래 예쁘게 널기' 뭐 이런 교육을 시키는 게 아닐까 하고 농담처럼 웃었지만, 모르긴 몰라도 주민들 자체가 아름다운 마을의 주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책임감은 분명 가지고 있는 것 같긴 하다. 깨끗한 거리도 그렇고, 소박하지만 절대 눈에 나지 않는, 청결하고 깔끔한 건물이며 베란다안에 비치는 살림살이들이 거하고 화려한 유적이나 풍경에 싫증난 우리에게 청량하고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버스 정류장 앞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는데, 주인아저씨가 내 디지털 카메라에 관심을 보여 온다. 알고 보니, 사진작가란다. 취미생활인지 전문사진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카페 안쪽 벽에 자기가 찍은 사진을 걸어 놓았으니 관심 있으면 구경하란다. 주로는 흑백 사진이 많았는데, 전부 직접 여행을 다니면서 찍어 온 사진들이었다. 케냐, 인도, 캄보디아등 주로 오지의 원주민들 사진에 관심이 많은 듯 했다.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아마도 관광수입이 80%를 넘게 차지할 스페인의 남부 작은 도시에서, 그런 오지들을 찾아서 사진을 찍으러 다니고 와서는 다시 관광객들에게 커피를 팔고.... 그냥 대도시에서 만난 사람 이였으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이곳에서 이런 사진들을 보니 뭔가 다른 느낌이 든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캄보디아에서 나무위에서 내려다보는 듯 찍은 원주민 꼬마 아이의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구시가지 안에 있는 작은 광장에서 해물 파에야를 먹고, 기념품 몇 개를 산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마르베야로 돌아왔다. 호텔에 도착하기 전에 마르베야 시가지에 내려 산책을 했다. 전날 밤에 둘러보긴 했지만 너무 깜깜했기에, 날이 밝을 때의 해변을 거닐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 지중해 여행이라는 제목의 가이드북이 있다면 반드시 표지를 장식해줘야할만한 그런 그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수많은 비치 파라솔들이 모래사장위에 쫙 깔려있고, 파란 바다와 야자수 나무, 모래사장 안쪽엔 야외 레스토랑들이 있고, 어디나 할 것 없이 숯불에 정어리를 굽고 있었다. 수영복만 챙겨왔어도 그냥 드러누워 뜨거운 스페인의 태양을 만끽할 터인데, 끊임없이 코를 자극하는 정어리구이 냄새에 킁킁거리며 사진만 연거푸 찍어댄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어서 호텔로 돌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