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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l 2005.06.12
일본 여행기 #2 '쿄코'


10여분쯤이 지나자 이쪽으로 누군가가 낯익은 발걸음으로 두리번거리며 다가온다. 채 얼굴을 알아보기조차 힘든 먼 거리지만 일본 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종종걸음 (‘뿅뿅 뿅뿅’하는 효과음이나 발밑의 먼지그림같은 것이 곁들여지는)의 주인공은 분명 쿄코다. 한손에는 까만 양산을 들고, (그녀에겐 햇빛 알레르기가 있다.) 다른 한손에는 손수건을 꼭 쥔 채 얼굴이 시뻘개져서 도착한 그녀는 예전과 변함없는 모습 그대로였다. 이제는 제법 숙녀답게 얼굴에 불그스레한 화장을 하고 머리가 조금 길어진 것이 달라졌다고 하면 다른 점일까. 쿄코 역시 보스톤에서 어학연수를 할 시절에 같은 클래스메이트였다. 6년 전의 그녀는 스무 살이었는데 일본 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수줍고 귀여운 캐릭터였다. 너무 말수가 적고 수줍어하는 성격에 친구가 없을까봐 걱정한 그녀의 홈스테이 미국인 아주머니가 우리 반 친구들을 모두 초대해서 파티를 열어 준 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덕분에 이미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던 우리들만 진창 얻어먹었지만.) 또한 말투가 너무나 느리고 조용조용한 스타일이라서 처음에는 그녀의 영어를 듣고 여느 일본인들처럼 영어가 미숙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일본말로 얘기할 때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정말 천천히 필요한 말만 꼭꼭 씹어서 얘기한다. 예를 들면 ‘모시모시’ 한마디를 2초나 걸려 ‘모-시-모-시-’ 이런 식으로 말한다. 나중에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한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더라도 정작 말을 할 땐 느리고 조심스럽게 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자주 무서운 흉기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그녀의 사려 깊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보통 일반 사람들에겐 그것이 답답하게 느껴질지 어떨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일본어 공부를 갓 시작한 나에겐 너무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쿄코의 살고 있는 곳은 토후쿠 지방의 센다이(仙台)라는, 도쿄에서 버스로 5시간 정도 떨어진 북서쪽에 위치한 도시이다. 내가 일본에 놀러온다는 소식을 알기도 전에 이미 도쿄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놀러 올 예정이었다고 한다. 나또한 내 편의대로 정했던 스케줄이었으므로 너무나 기가 막힌 타이밍이 아닐 수 없겠다. Contax T3, at SAWA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