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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l 2005.09.19
LUCK

얼마 전 동생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강남의 한 멀티 상영관에 갔을 적의 일이다.

신용카드로 예매하는 무인 창구에서 열심히 표를 사고 있는데, -늘 인터넷 예매를 통해 구입했던 터라, 처음 사용해보는 단말기의 사용방법에 익숙지 않아 애를 먹고 있던 참이었다. -어느 샌가 뒤에서 도우미 언니가 쓰윽 나타나서 친절하게 사용법을 일러주신다.

덕분에 쉽게 표를 구매하게 되어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해맑은 얼굴로 신용카드로 영화 표를 구입하면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며 뒤에 마련된 조그마한 코너를 손으로 가리킨다.

‘이벤트’ 라는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무시하려 했는데 의외로 사람이 한명도 없다. 어차피 영화 시작까지 시간도 있고, 궁금하기도 해서 뭔지나 알아보기로 했다. 안내 도우미의 설명에 의하면 그 이벤트란 것의 내용인 즉, 커다란 투명 유리 원구 안에 손을 넣어 작은 스티로폼 구슬 하나를 뽑아 당첨이 되면 선물을 준다는 매우 원시적이고도 성의 없는 방식이었다. 유의사항은 절대 구슬을 뽑을 때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서, 자신이 뽑는 구슬의 색깔을 보면 안 된다는 것. 시골의 유원지에나 있을법한 유치한 이벤트이지만, 뭐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구슬을 뽑아보기로 했다.

투명 유리구 안에서 빙빙 돌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구슬은 하얀색이고, 그 가운데 언뜻 언뜻 색깔 있는 구슬이 한두 개 섞여 있었는데, 동생이 손을 넣어 더듬더니 대뜸 파란색 구슬을 확 집어낸다.

“이거 머에요?”

라고 파란 구슬을 내밀자, 무미건조하게 이벤트 내용과 참가방법을 설명하던 도우미 언니의 표정이 확 굳는다. 순간 나는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헉’하는 외마디 비명을 들었다고 생각한다.

“이거 좋은거에요?”

기대감에 들떠 물어보자, 그녀는 눈은 절대 마주치지 않은 채,

“오늘 파란구슬 뽑으신 분...처음이에요. 저도 놀랐네요.”

라고 더듬더듬 대답하더니 아무 말 없이 책상 뒤쪽으로 가서 박스하나를 꺼내든다. 뭔가 대단한 게 걸렸나봐하며 흥분한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그녀가 박스 안을 뒤적여서 꺼내어 내민 것은 공짜 영화 관람권 한 장. 그것도 반드시 돌아오는 주의 평일에만 해당된다고 한다.

“에게게? 이게 다에요? 엠피쓰리 플레이어도 주고 프린터도 준다면서요. 그건 뭐 뽑아야 주는 건데요?”

다소 실망해서 따지듯 묻자, 그녀는 당황하며 말을 더듬거리다가

"빨간 구슬이요...” 라고 고개는 들지도 않은 채 짧게 대답한다.

“에이...아닌 것 같은데?”

내가 웃으면서 농담반 진담반 계속 다그쳐도 그녀는 애써 우리의 시선과 질문을 외면한다.

그러고 나서 이벤트에 관한 내용을 써놓은 광고판을 읽어보니, 당첨 선물의 내용은 이것저것 화려한데, 무슨 색깔 구슬을 뽑아야 그 선물을 준다는 구체적 내용은 없다.

더 이상 따지기도 머하고, 어차피 공짜 영화권도 어디냐 싶은 마음에 그냥 발길을 서점으로 돌린다. 걸으면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뭔가 찜찜하다.

빨간 구슬 하나, 검정 구슬 하나 파란 구슬 하나인데, 고작 영화 관람권 한 장이라니.

그렇다면 도대체 MP3 플레이어며 스캐너며 등등의 굵직한 상품들은 뭘 뽑아야 준단 말인가.

동생도 나와 같은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는지, 갑자기 분한 듯

“너무 아깝지 않아? 그 수많은 하얀 구슬 속에서 파란 구슬을 집기가 그렇게 쉬웠겠냐고.”

하며 아쉬움을 토해낸다.

“아무래도 거짓말 한 것 같아. 그렇게 상품권으로 다 때우고 나중에 자기가 다 챙기는 거 아닐까?”

“하긴 누가 뭘 뽑았었다는 증거도 없고...그래도 되겠다. 다시 가서 우리 우길까?”

“파란 거 뽑았다는 증거도 없잖아. 사진도 찍어 놓은 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뽑기 전에 무슨 색이 어떤 상품인지 물어라도 볼걸.”

“몰래 숨어서 보다가 딴 사람들한테 뭐라고 하는 지 볼까?”

“할일 참 없네...”

“[파란 구슬에 목숨 건 김동률] 하고 인터넷에 내일 바로 뜨는 거 아냐?”

이런 유의 대화를 나누면서 아쉬운 맘을 달래고 있는데, 갑자기 동생이 사뭇 진지하게 묻는다.

“오빠 혹시 이게 나의 올해의 가장 최고운이였으면 어떻게 하지?”

“설마....” 하고 내가 말꼬리를 흐리자,

“나 원래 이런 당첨 운 지지리도 없단 말야. 정말 간만에 뽑았는데....”

라며 한숨을 폭 쉰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이런 운은 참 없는 편이다. 추첨해서 가는 유치원, 초등학교 다 떨어지고 응모권이나 상품권 당첨 같은 건 되어본 역사가 없다. 물론 가수가 되고 난 후엔 그런 참여 자체를 안 하게 되었지만, 뭐랄까 공으로 얻는 운은 나에겐 존재하지 않는다고 늘 생각해왔던 터였고, 그래서 로또며 복권 같은 것조차 한번 사본적도 없는데 동생도 딱히 다른 상황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상황이 안타까운 것이다. 딱히 상품에 눈이 어두워졌다거나, 그 도우미 언니를 의심한다기 보다는, 웬만해선 찾아오지 않던 운이 간만에 왔는데-어쩌면 올해에 한번 있을 행운, 좀 비약하자면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행운- 그걸 본의 아니게 허튼 곳에 소비해버린 그런 상실감이 우리를 허탈하게 만든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그 이벤트 코너를 다시 찾아가지 않은 채 그냥 서점에서 시간을 때웠다.

좋아하던 감독의 새 영화는 너무 어이없이 실망스러웠고, 그 충격의 파장이 너무 커서 영화가 끝난 후 ‘이벤트 당첨 사건’ 따위는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게 되었다. 며칠 뒤 동생은 그 공짜 관람표로 또 다른 어이없는 한국 영화를 한 편 더 보았다고 한다. 공짜였기에 그나마 마음을 좀 다스릴 수 있었다며 이벤트에 참가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