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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l 2008.12.11
2002 월드컵 이야기 #4

한국이 연장전까지 가는 각축전 끝에 이탈리아를 2대1로 이겼다는 사실은 다음날 학교 가서 알게 되었다. 함께 모여서 밤을 새고 축구를 보았을 한국 학생들은 모두 다 어디선가 쓰러져 자고 있는지 눈에 띄지 않았다. 16강에서 탈락한 일본 친구들은 침울했다. 나와 마주치면 먼저 선수 쳐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Don't even talk about World cup."

그날 밤 집에서 조우한 룸메이트는 완전 극도의 흥분 상태였다. 하긴 한국 축구가 8강에 진출한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것도 강호 이탈리아를 격파하고 말이다. 한국의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은 온통 빨강의 물결이었다. 감격에 겨워 광분한 한국 국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그런 광경을 멀리 이국땅에서 인터넷으로 지켜보는 나로서는 뭔가 아득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축구를 좋아하진 않지만 역대 월드컵의 전적을 대충 아는 나로서도 믿어지지 않는 결과이니 눈앞에서 지켜본 국민들이야 오죽했을까. 문득 4년 전 프랑스 월드컵 때 의도치 않게 파리를 여행 중이었던 내가 지하철에서 프랑스 꼬마들에게 당했던 수모가 기억이 났다. 네덜란드에게 5대0으로 대파한 날이었는데, 너네 나라 졌으니까 어서 비행기타고 돌아가라고 킬킬거리며 비웃었더랬다. 축구 보러 온 거 아니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그때의 울분과 뭔지 모를 창피함이 아직도 생생했다. 학교 프랑스 친구들에게 보란 듯이 자랑해 볼까 하는 기분도 들었다.

그래도 아직까진 경기를 보고 싶다라던가 안본 것이 후회가 된다던지 하진 않았다. 무척 재밌었을 것 같은 생각은 물론 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밤을 새고 다음날 수업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그러고 싶지 않았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뱉어놓은 말이 있었다. 룸메이트는 절대 내가 축구경기를 관람하는 것을 허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8강에 오른 것도 기적인데 4강전에서 이길 리가 만무했다. 상대는 스페인이다. 기왕이면 이기는 게임을 보고 싶다. 당연히 지게 되어 있는 게임을 봤다가 형 때문에 졌다고 룸메이트한테 받을 원성을 어찌 감당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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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이 강호 스페인마저 승부차기로 꺾고 4강에 진출하자 내 마음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정말 결승 가는 거 아냐 하는 생각에 미친 것이다. 아무리 홈그라운드에서의 경기라고는 하지만 월드컵 4강 진출은 그런 텃세로만 될 일이 아닐 터이다. 히딩크라는 감독(그때 파리에서 5대 0으로 대한민국을 완파시킨 네덜란드 팀의 감독이었다.)과 더불어 선수들의 기량과 노력, 그리고 독립운동 이후에 이런 단결과 화합이 있었을까 싶은 한마음으로 뭉친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이 이루어낸 결과였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서 읽고 룸메이트에게 들은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보고 싶었다.

독일과의 4강전 정말 보고 싶었다.

나도 한번 '대~한민국'을 함께 외치며 응원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