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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l 2008.12.12
2002 월드컵 이야기 #5

하지만 나는 내색 할 수 없었다.

독일전을 앞두고 집을 나서며 룸메이트는 또 나의 손을 꼭 잡았다.

"형 그동안 너무 고마워. 나한테 미리 얘기해줘서 정말 고마워. 우리 한국 여태까지 진짜 잘했거든? 오늘 정말 중요한 게임이야. 독일이랑 4강전에 붙어. 물론 형은 관심도 없겠지만."

'이제 관심 있는데...'

"그냥 형은 그냥 평소대로 자면 돼. 알았지? 내가 맛있는 거 많이 사다놨거든? 그거 먹고 빨랑 자. 알았지? 나 갔다 올게! 대~한민국!"

나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그는 비장하게 응원 구호를 마치고 각종 준비물을 빠짐없이 챙겨서 나갔다. 그리고 난 후 나는 몇 시간 동안 계속 뭔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새벽에 치러질 경기가 너무나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귀찮아서 무심코 던진 말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보는 축구경기 하나도 내 맘대로 볼 수 없게 된 상황이 울적했다. 룸메이트가 날 벌주려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런 꾀를 부릴 놈도 아니고 또 그럴 상황도 아니다 지금은.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는 심정으로 승리를 위해선 뭐든지 한다라는 마음의 일환이었을 터이다.

계속 인터넷으로 월드컵 관련기사들을 뒤적이다가 결국 그렇게 잠이 들었나보다.

꿈에서도 월드컵 경기가 펼쳐졌다.

얼굴도 모르는 한국 팀 대표선수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골을 먹었다. 관중들이 괴로워했다.

전광판에 좌절하는 한 관중의 모습이 클로즈업 됐다.

룸메이트였다.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형 지금 왜 경기를 보고 있는 거야? 그런 표정이었다.

순간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간적으로 머리맡의 시계를 확인했다. 경기가 끝났거나 아니면 이제 거의 끝나갈 시간쯤인 듯 했다.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못 참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축구 어떻게 돼가?"

다짜고짜 그것부터 물었다.

"어...웬일이셔? 축구 관심 없다며. 지금 후반전 다 끝나 가는데 아직 0:0..."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갑자기 친구의 어투가 이상했다.

"어......? 어?........어? 어? 어? 야! 한 골 먹었다. 너 참 타이밍 기가 막히다."

나는 몇 초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머리가 노래지더니 눈앞에 꿈에서 본 룸메이트의 얼굴 표정이 떠올랐다.

"승우한테 나한테 전화 왔었다고 말하지 마? 알았지? 절대 비밀이다!"

곧바로 전화를 끊은 후 나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숨을 죽였다. 뭔가 내가 너무 큰일을 저지른 것만 같았다. 조금만 참을 껄 하는 후회가 물밀 듯 밀려왔다. 그리고 한편으론 너무 어이가 없었다. 전화를 걸자마자 어떻게 골을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이미 1:0으로 지고 있었으면 모를까. 정말 나에게 그런 징크스가 있었던 건 아닐까? 전화를 안했더라면 이겼을까? 불안한 마음과 죄책감이 가슴을 죄어왔다. 어딘가 이런 기분을 털어놓고 싶었다.

다시 전화기를 들고 이번엔 아랫집 상형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자초지명을 설명했다.

내가 친구한테 전화를 하자마자 골을 먹었다...

승우가 알면 난 죽었다...

너무 기분이 이상하다...

상형은 심드렁하게 내 말을 듣고 있더니 딱 한마디 해주었다.

"넌 세상이 네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있나보구나.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