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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l 2008.12.15
2002 월드컵 이야기 #6

다음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저녁 무렵에 돌아왔더니, 룸메이트는 식탁에 혼자 앉아 평소 한잔도 힘들어하던 맥주를 3병째 비우고 있는 중이었다.

"형....."

축 늘어진 그의 눈빛과 표정에는 세상의 모든 슬픔과 괴로움이 가득 담겨있었다.

"졌어.... 이길 수 있었는데...충분히 이길 수 있었는데..."

그는 이미 혀가 꼬일 대로 꼬인 상태였다.

"괜찮아.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한 거지 뭐. 16강 진출도 처음이었는데 단박에 우승하는 건 그렇잖아. 그것도 개최국이...."

나는 평소와는 다르게 성심 성의껏 위로해 주었다. 왠지 모를 미안함에 죄를 진 기분이었다. 그는 축구 얘기라면 질색을 하던 내가 이렇게 나오자 뭔가 위로도 되면서 감동한 눈치였다.

"그렇겠지 형?"

"그럼..."

"그래도 너무 아쉬워... 형... 아... 한국에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람들이랑 같이 기뻐하고 아쉬워하고. 아..난 내가 여기 있는 게 너무 괴롭다 형."

맥주 한 모금을 다시 들이키더니 이젠 식탁에 얼굴을 묻고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어여 들어가서 그만 자. 너 학교도 많이 빠졌잖아. 내일부턴 수업 열심히 들어야지."

"알았어 형."

나는 그를 부축해서 방 침대에 눕혀주었다. 밤새고 잠도 얼마 못 잤던지 얼굴이 까칠해보였다. 양말만 벗겨주고 불을 끄고 나오려는데 침대에 누워있던 그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형!"

"응?'

"형 혹시... 오늘 경기 봤어?"

나는 순간 움찔했다.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지만 태연히 이렇게 대답했다.

"보긴 어떻게 봐. 우리 집에선 나오지도 않잖아."

"하긴... 그렇지. 그래...그렇겠지..."

중얼 거리던 룸메이트는 곧 잠이 들었다.

마치 마구 울고 난 뒤처럼 조금은 평온해진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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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월드컵이 끝나고 룸메이트는 한국전 비디오를 모조리 구입하여 틈만 나면 돌려보곤 했다.

덕분에 나도 처음부터 끝까진 아니더라도 주요 장면들 정도는 웬만큼 다 훑게 되었고, 전혀 몰랐던 선수들의 얼굴과 이름도 식별 할 수 있게 되었다.

비밀은 끝까지 지켜서 룸메이트는 아직도 내가 경기 중에 친구에게 전화를 했던 사실은 모르고 있다.

포르투갈전을 한국에서 관람하느라 학기 초 수업을 빠져야했던 룸메이트는 결국 그 덕에 나보다 한 학기 늦게 졸업하게 되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2002 월드컵을 한 번도 안 본 사람이 주위에 한명 더 있었으니 그는 바로 정재형이다.

4년 뒤에 열린 독일 월드컵 경기 때에는 빠짐없이 모든 경기를 시청했지만 한국은 16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후, 내가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베이징 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미터에서 박태환은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로서 세상은 결코 날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