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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l 2009.02.23
어느 늦은 오후

늘어지게 자고 난 오후.

맞춰놓은 알람도 없었고, 불청객처럼 울려대는 전화소리도 없이 그냥 실컷 꿈속의 허무맹랑한 모험을 실컷 즐기다가 슬슬 싫증이 나서 눈이 스르르 떠진 늦은 오후.

시계에 눈길도 주지 않고 뭉그적거리며 일어나서 비틀 비틀 거실로 나오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부엌 창을 통해 지고 있었다.

전날 깨끗이 청소해 놓은 번질거리는 마룻바닥 중앙쯤에 다용도실 창문과 부엌 창을 통과한 햇살 한 움큼이 고여서 연못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부엌에서 진한 커피 한잔을 뽑은 후 그 햇빛을 쫓아 다용도실로 나가서 창문을 열고 이미 하루에 3분의 2가 지나버린, 그러나 나의 첫 시작인 오늘을 바라보았다.

아무 계획도 없고 특별히 해야 할 일도 없는 평범한 오늘.

2년여 동안 살면서 하루에 한번쯤은 바라봤을 똑같은 도시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불현듯 이 익숙한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세상은 아직 날 기다리고 있고, 난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있다.

앞으로 살면서 봐야할 것들, 읽어야 할 것들, 들어야 할 것들, 만나야 할 사람들, 경험해야 할 것들이 아직도 넘치고 넘치게 널려있다. 지금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 너머에 아직 내 두발로 밟아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묵묵히 날 기다리고 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창 밖에 고개를 내밀고 큰 숨을 쉬어보니 어제와는 분명 다른 흙냄새가 난다.

봄이 오나보다.

이제 곧 어디론가 떠나야 할 계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