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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l 2009.10.30
기록과 되새김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웬만하면 잘 꺼내듣지 않았던 솔로 2집 중 '편지'라는 곡이 우연히 셔플로 듣고 있던 아이팟에서 흘러나왔다. 그래 이런 곡이 있었어. 버클리에 처음 입학했던 시절, 피아노를 한번 쳐보겠노라고 죽기 살기로 연습했던 시기가 있었다. 딱 6개월만 해보고 안되면 접자라는 마음으로 매일 매일 연습실에서 지하철 막차가 끊기기 직전까지 죽어라 연습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후 이건 나의 길이 아니다 라는 생각에 미련 없이 포기했다. 그래서 이 시기가 나의 피아노 실력의 최고점이 아니었나 싶은데, 그 시절 만들고 편곡한 곡이 바로 이 '편지'라는 노래다. (이 무렵엔 모든 곡을 전부 재즈로 바꿔서 치는 재즈병에 심각하게 걸렸더랬다.) 물론 히로미가 많은 부분 감수를 해주었고 연습도 지도해 주었지만 내 평생에 처음으로 (아마 그리고 마지막이 되겠지만...) 스튜디오에서 클릭 없이 Free tempo로 외국인 드러머, 베이시스트와 함께 원테이크로 녹음을 하였더랬다.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뭐 여타 재즈 연주자들에 비해 택도 없이 부족한 솜씨이지만 정말 오랜만에 다시 듣고 있노라니 '아...정말 이게 내가 친거 맞아? '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랍고 생경하기만 하다. 지금 과연 저렇게 손가락이 돌아갈 수 있을까? 한번 죽어라 연습하면 다시 비슷하게 칠려나? 결국 그 6개월 동안의 맹연습이 남긴 건 이 한곡의 연주뿐이로구나.... 갑자기 유학시절이 그리워지면서 추억 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1평 남짓한 피아노 방이며 쉬는 시간에 커피와 함께 피던 담배 맛이며... 그리고 짧게 짧게 연습실 밖에서 친구들과 나누던 대화들... 그러다가 갑자기 문득 지금 당장 이 곡을 한 번 연주해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온 집안의 악보 파일이란 파일을 다 뒤져봤지만 좀처럼 악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정리를 잘 해놔도 꼭 찾으려는 것은 없다. 공연을 일주일 앞둔 추석 연휴의 첫날. 나는 CD를 들으며 공연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 곡의 피아노 악보를 그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불타오른 학구열에 편집증적인 정리와 기록병이 얹어져서 어떻게든 이 복잡한 피아노 악보를 영구 보존할 수 있게 컴퓨터로 깨끗하게 만들어서 연습을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어버리게 된 것이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손쉽게 넘어가지 않는 복잡한 리듬과, 현란한 화성, 스케일들과 씨름하다 보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고, 결국 4시간 만에야 시커먼 콩나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프린트된 악보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이제는 이걸 가지고 연습해 보는 일만 남았는데 뿌듯함도 잠시, 왠지 모르게 좀 서글프다. 생각해보면 불과 9년전의 일인데... 그때의 나만큼 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단 마음으로 이렇게 애쓰고 있다는 것이 스스로 한심하고 좀 안쓰럽게 느껴지는 기분이랄까. 그때 피아노를 포기한 게 과연 옳은 결정이었을까 하는 자문과 더불어 괜히 쓸데없이 시간 보내지 말고 하루에 30분이라도 연습을 꼬박 꼬박 할 껄 하는 후회. 그래도 이런 조그만 자극이 또 다음을 기약할 작은 도약이 될 수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연습은 다음 기회에. 오늘은 여기까지. 2009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