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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2012.06.10
기억의 습작
'기억의 습작'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든 곡이다.
그 때 당시 내 주위엔 팬이 많지 않았다. 동생들한테 들려주면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고 심드렁하기 일쑤였고, 친구들의 반응도 썩 긍정적이지 않았다. 잘난척한다고 싫어하는 애들도 있었고 부러워서 일부러 별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만든 습작들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던 친구는 유일하게 딱 한 명뿐이었는데, 우리 반 반장이었고 그 해 교내 가요제에 같이 나갔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그는 워낙 성격이 낙천적이고 매사에 너무 긍정적이라 그의 의견을 무조건 믿기엔 좀 불안했다. 들려주는 곡마다 다 좋다고 말해주고 가끔씩 넌 천재인가 보다고 치켜세워줄 때면 기분이야 좋았으나, 객관적인 모니터로 삼기에는 영 미덥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기억의 습작'을 처음 들려줬을 때 그의 뜨거운 반응도 나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들었더랬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조회를 마치자마자 녀석이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쪼르르 내 자리로 달려왔다.

"어제 있잖아. 어떤 여자애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응? 너 전화하는 여자도 있어?"

"아니? 잘못 건 전화였어."

"에이… 어쩐지……."

"근데 목소리가 너무 예쁜 거야. 그래서 내가 기왕 전화 잘못 거신 김에 혹시 지금 시간 괜찮냐고 물어봤거든?"

"뭐? 그래서 꼬셨어?"

"아니 좀 들어봐. 아무튼 시간이 있냐고 물어보니까 당황하면서 왜 그러시냐고 묻기에, 제 친구가 작곡한 노래가 있는데요, 한번 들어보실래요? 그랬지?"

나는 깜짝 놀라 그제야 책에서 고개를 들었다.
아니 허락도 없이 내 곡을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들려줬단 말이야?

"뭐라고?"

"그래서 전화기에 대고 '기억의 습작'을 틀어줬거든? 나는 중간에 전화를 끊었으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끝까지 다 들었더라? 그리고는 너…무…좋아요…… 하는데 목소리가 정말 감동 먹은 것 같았어. 너 이제 진짜 인정받은 거야!"

나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리고 나름 시크하게 대답했다.

"그냥 예의상 한 말이겠지… 그나저나 걔도 웃긴다. 그걸 들려준다고 듣고 있냐…."

그 뒤에 친구가 그 여자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어쨌는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아마 내 친구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때 친구는 그냥 자기 말에 객관성을 부여받고 싶었던 것뿐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궁금해지곤 한다.
과연 그 분은 그 때의 일을 기억할까.
만약 그렇다 해도 그 때 그 노래가 '기억의 습작' 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매칭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피아노 반주 하나의 어설픈 완전 초짜 데모 버전이었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그 분 또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 조차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누군지 모를 그 분에게 이 글을 통해 고백하고 싶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모르는 누군가를 짧은 한 순간이나마 감동시켰다는 기쁨이, 어쩌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냥 끊어버렸을 수도 있었는데, 착하게도 내 친구에게 할애해 준 2분여의 시간과 예의상이었을지도 모를 '좋다'는 말 한마디가, 나도 나의 음악으로 누군가를 감동 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