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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2012.05.02
파리에서 온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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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데 동생이 다급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오빠! 좀 내려와 봐!"

프랑스 남자와 지현이가 뭐라고 불어로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은데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1층 거실로 내려왔더니 동생과 후배가 망연자실 테이블 위의 수북이 쌓인 물건들을 바라보고 있다.

"도대체 은주 언니에게 뭐라고 했길래 이런 소포가 온 거야!"

은주는 파리에서 유학중인 친한 동생. 원래 저번 주말에 놀러 올 예정이어서 주소도 알려주고 오는 김에 라면 몇 개와 꼬마 김치 몇 봉지만 사다달라고 부탁하긴 했었다. 감기 때문에 다음 주 쯤 놀러오기로 한 그녀에게서 한 박스 분량의 소포가 날아온 것이다.

라면과 햅반은 물론, 
된장, 고추장, 참깨, 참기름, 쌈장.
국물 내는 용 멸치, 말린 다시마, 미역, 말린 우거지, 말린 고사리, 말린 버섯.
각종 김치 다섯 봉지.
소면, 쌀, 김, 누룽지 등등등

언뜻 봐도 한 달은 너끈히 먹고도 남을 분량의 한국 음식 재료들.
내가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얘기를 어떻게 했기에, 아니면 평소 그녀에게 어떻게 대했기에, 라면 두 봉지와 꼬마 김치가, 한 학기 유학생의 식료품 분량이 되어 날아왔냐며 다들 나를 힐난하는 눈빛.
원래 남들한테 잘하고 받는 것 보다 챙겨 주는 것을 좋아하는 착한 그녀가 엄마의 맘으로 한국 음식이 고플 우리를 위해 이거저거 빠짐없이 챙기다보니 이렇게 불어났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며칠 뒤면 우리가 아를을 떠나 다른 도시로 옮기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면서 이것들을 어떻게 다 이고 지고 가라고 보냈는지... 심지어 가뜩이나 무거운 짐 때문에 아를로 오기 전에 당장 필요 없는 짐들은 파리의 그녀 집에 맡기고 오기까지 하질 않았는가. 분량이 5분의 1만 되었어도 사실 펄쩍 펄쩍 뛰며 좋아했을 너무 귀한 선물인데, 우린 그 양에 질려 정리할 생각조차 못하고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우리 이제...... 외식은 글렀어......"

후배의 체념어린 한마디. 
그리고 동시에 터져 나온 웃음.

불과 어제만 해도 중국 상점에서 파는 태국 쌀로 만든 볶음밥에 너무나 감격해했던 우리였는데. 하루 만에 상황이 반전 되어 이것들을 언제 다 해먹을까 심난해하게 되다니. 사람은 마음은 정녕 이렇게 간사한 것이란 말인가.

"아... 정말 은주언니.... 정말 못살아... 난 아욱이나 불릴게요."

또다시 빵 터진 우리.

구수한 아욱국의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는 아를의 아침.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왠지 모를 불편한 밥상.
그래도 오랜만에 느끼는 집밥의 향수에 젖어 있을 무렵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은주야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너무나 태연한 그녀의 대답

"오빠 그거 다 일회용이에요! 한 번 해 먹으면 다 끝나, 끝나!"

끝나긴 뭐가 끝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