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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2012.04.15
파리에서의 첫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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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 적응에 실패한 나머지 아침 8시부터 집을 나섰다. 브런치를 먹고 예상치 못한 추위에 달달 떨다가 퐁피드 센터의 마티스전을 꼼꼼히 관람하고 나니 아직 2시도 안되었는데 피곤이 급 몰려왔다. 뤽상브루크 공원을 갈까 튈리르 공원을 갈까 고민하는 일행들을 뒤로 한 채 나는 과감히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해가 나기 시작해서 북적거리기 시작하는 일요일 오후의 눈부신 파리를 마다하고 휴식을 선택한 것이다.

달콤하게 두 시간을 푹 잔 뒤 일어났더니 창문으로 햇살과 함께 거리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쏟아진다. '아... 여긴 파리지...' 잠은 다 깼는데도 아늑한 침대 속을 벗어나고 싶지 않아서 머리맡의 소설책을 집어 들었다. 오후 4시. 어떻게 할거냐는 일행의 문자에 좀 더 집에서 쉬겠다고 답장을 보내곤 다시 독서 삼매경.

그러다 문득 96년 처음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땐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보고 하나라도 더 봐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녀도 성에 안차서, 마치 과제하는 기분으로 강행군을 거듭한 나머지 늘 지치고 피곤했었다. 입력되는 정보의 양은 넘쳐났지만 대부분 소화불량인 채 기억 저편으로 아득해져버린, 눈으론 미술관의 그림을 보고 있지만 머릿속으론 어서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었던 기억. 

물론 지금은 다시 또 오면 되지 뭐 하는 여유도 생기고 훨씬 더 먹은 나이도 무시 할 순 없겠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조금씩 내가 여행을 즐기는 법에 대해 터득해가고 있는 듯 하다.
어쩌면 내가 누릴 수 있는 여행 중 최고의 사치는 미슐랭 별 3개 레스토랑에서의 저녁 식사도, 별 다섯 개짜리 호텔에서 투숙하는 것도 아닌, 이렇게 대낮에 여유롭게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 이 순간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