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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20.09.17
아주 뒤늦은 후기입니다. (원 게시글 제목 : [스포주의])

금요일 첫공을 보았습니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앞뒤 생각 없이 평일 저녁 공연을 예매했어요.

회사에 잠시 들러 업무를 살짝 보고는 오후 3시 즈음 KTX를 타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너무 일찍 가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은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로비에 길게 늘어선 MD 줄, 빈자리를 찾기 힘든 의자와 테이블을 보고 살짝 놀랐어요.


률님, 저 실은 요즘 뭘 하고 뭘 먹어도 크게 감흥이 없는 무덤덤한 상태입니다.

부산 떠나기 전에 잠시 들른 사무실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인사를 하고 나왔는데,

막상 도착하니 '너무 좋아서, 너무 벅차서' 이 느낌이 안 나는 거예요.

설레고 들떠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뭐랄까 그냥 차분하달까 그랬어요.


공연장에 입장하고 멀리서 무대를 보고서는 살짝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 내내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잔잔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고 첫곡이 나오는 순간 살짝 울컥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작년 공연 때 참 듣고 싶었던 곡인데, 그 곡이 첫곡으로 나왔는데도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았어요.

저는 참 상당히 감정적인 사람인데 이상하리만치 평온했습니다.


허를 찌르는 뜻밖의 곡들이 참 많은 공연이었잖아요?

두번째 곡이 정말 예상 밖이었고 재즈병 걸리셨을 때 만드셨다던 그곡도 전 참 애정하는 곡이었고요.

그리고 제가 사랑해마지않는 탱고 곡들도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랐었어요.


2부의 첫곡인 콘트라베이스로 시작하는, 콘서트에서만 들을 수 있는 편곡된 그곡은 들을 때마다 매번 반하고요.

거의 10년 만에 듣는 콘서트에서 듣는, 봄만 되면 제가 마르고 닳도록 드는 그 곡은 전주 나오자마자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ㄴㄷ과 ㅈㄷ이라니.

처음 곡은 저 진짜진짜 그 앨범에서 애정하는 곡 중에 하나인데, 편곡 그렇게 말도 안되게 하시면 저 어쩌라는 겁니까. 너무 좋아서.

그곡 내내 저는 입도 못 다물고 눈이 동그래져서는 '이게 무엇인가' 하면서 들었어요.

두번째 곡을 가만 듣다가 '아.. ㄴㄷ이랑 ㅈㄷ이구나.' 해서 혼자 피식 웃게 되더라고요.


률님이 이번 공연을 이 곡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다 한거 같다고 말씀하셨던 그곡.

와, 사람이 너무 현실감이 없으니까 좋아도 좋은 줄을 모르겠는 그 느낌 아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 좋았던 건 률님을 엄청나게 가까이에서 봤다는 거예요.

작년 공연 때엔 정말 대형 스크린 아니었으면 률님 눈, 코, 입을 볼 수도 없던 거리였어서 정말 아쉬웠거든요.

이번 공연은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도 률님의 작은 표정 변화까지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공연을 다 보고 나와서는 다시 담담해지는 기분.

이제 내가 률님 공연을 보고도 아무 느낌이 없는 건 감정이 식었다는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막차 심야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도 공연 내내 어땠는지 되집어보는게 만사 귀찮은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어요.

쪽잠을 자고 일어나 볼일 때문에 외출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무기력한 느낌.

평소 같았으면 몇시간동안 후기를 쓰고 SNS에 업로드를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인데 아무 것도 하기가 싫었어요.


감정이 정리가 안되는 토요일 하루였습니다. 이게 무슨 기분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집에서 나와 세모녀가 저녁 식사를 하는데 제가 뭔가 이상해보였는지 언니가 묻더라고요.

공연 보고 온 후 며칠은 제가 팔랑팔랑 날아다니는데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오늘은 출근을 해서 막내와 부장님과 담소를 나누다 지금의 제 상태를 얘기했어요.

아무나 붙잡고 그냥 엉엉 울고 싶다고.

우리 막내는 가을 타는 거라고 그러고, 엄마 같은 우리 부장님은 슬픈 영화 보면서 그냥 막 울어버리라고 그러시더라고요.

바깥에서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그 긴긴 넋두리를 부장님이 다 들어주셨습니다.


률님, 작년 공연에 마지막 인사로 그러셨죠? 올해도 작년이랑 같은 말씀으로 마무리하셨죠?

늙어서, 멋지게 늙어서 다시 만나자고요.

저 이번 공연 예매하고 제가 쓴 작년 후기를 찾아봤는데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저는 지금 너무 후지게 늙었어요. 그냥 늙기만 했어요.


어제 공연을 보면서, 중간중간 률님의 멘트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률은 저렇게 지난 1년을 성실하고 정말 멋지게 살아왔는데 그게 공연으로 온전히 느껴지는데.

나는 회사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짜증내고 화내고 싸우고.

제가 어릴 때 생각한 어른의 모습은 정말 이게 아니었거든요.

엄청나게 대단한 어른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건 정말 아닌 거 같거든요.


무의미한 나날들입니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는 요즘이에요.

률님의 공연으로도 '기분 전환'이 되지 않는 그런 상태예요.

이렇게 후기를 쓰면서도 감정이 이랬다가 저랬다가 왜 그럴까요.

아마 이 글은 제가 등록 버튼을 누르지 않을 거예요.


근데요. 률 이번 공연은 꼭 라이브앨범 내주세요.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요. 이건 기존 앨범으로 들을 수가 없어요.

나 이 와중에 이런 소리나 하고 있네요.


아, 그리고 일렉트로닉에 빠진 기타리스트 상순님과 베란다 프로젝트 2 못하시는 대신

귤 농사 짓는 제주 농부 폴님과 '폴람회' 어떻습니까.

저 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아마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하루종일 웃고 다닐 거 같은데.

미X 여자 소리 듣고도 아무렇지 않을 거 같은데.